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3장 행주대첩과 전라도 병사들<268>

행주산성 아래 들판에 진을 친 왜 군단의 고적대(鼓笛隊)가 둥둥둥둥 전고(戰鼓)를 울리고, 뒤이어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이 일었다.

“다이오 고케키!(대오 공격), 다이오 고케키!”

“데키오 센메츠시요!(적을 섬멸하자), 데키오 센메츠시요!”

“센메츠!(섬멸), 센메츠, 센메츠! 와~”

아침 나절까지만 해도 소부대가 간보기로 공격을 하더니 사시(巳時) 중간쯤에 이르자 전체가 공격할 요량으로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이윽고 고케키! 고케키! 하며 왜병들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왜병들이 새까맣게 산에 깔렸다.

조선군은 목책 뒤에 숨어서 대응했다. 수차석포가 돌멩이를 뿜어내고, 도창이 날아가고, 강궁(强弓)의 시위를 당겼다. 그때마다 선두 적병들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올라오고 있었다. 적의 군마들이 히히힝 소리를 내며 올라오고 있었다.

“적진으로 들어 적의 허리를 잘라라!”

정충신이 명령했다. 왜군복으로 변복한 수하 유격병들이 일제히 왜군 대오로 뛰어들었다. 왜의 선두에는 투항군이 투입되었는데 허리를 자르자 졸지에 허둥거렸다. 선두는 어딘가 미덥지 못했다. 고케키! 복창은 할지언정 기백이 없었다. 하긴 전쟁의 절박성과는 무관한 자들이고, 총알받이로 끌려온 것을 알고 인생 체념한 자들이었다. 투항병은 쓸모가 없다는 말이 딱 맞았다. 후미의 병사들은 오랜 전쟁에 지쳐있었다. 이런 때 지휘관을 제거하면 적은 지리멸렬해질 것이다.

김판돌 조가 5군 선봉장 깃카와 히로이에 부대 쪽으로 숨어들었다. 깃카와는 1차 공격에서 자신감을 얻었던 듯 선봉에 나서 앞질러 산을 오르고 있었다.

“발분하라!”

깃카와 선봉장이 외치며 가파른 곳에 이르렀을 때, 바위 틈에 매복한 김판돌이 디립다 기습하여 그의 옆구리를 칼로 쑤셔박고 발로 걷어찼다. 깃카와가 떼구르르 산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조선군 자객이다! 사령관을 찔렀다! 저놈 잡아라!”

적장 호위 창병이 김판돌에게 창을 날렸다. 김판돌이 가슴을 감싸쥐고 쓰러졌다. 창끝이 김판돌의 가슴을 뚫고 등짝 밖으로 나왔다. 다른 조원이 창병에게 달려들었으나 왜병이 먼저 일본도를 뽑아들어 조원의 목을 쳤다. 조원의 머리가 단박에 날아갔다. 적은 역시 칼을 잘 썼다.

“숨어라!”

정충신이 외치고 자리를 옮겼다. 적병이 그를 뒤쫓으며 소리질렀다.

“바가야로! 저 새끼 잡아라! 조선군의 수색병, 세작병들이 전선을 교란하고 있다!”

그러나 몸이 동강이가 난 지렁이처럼 적진이 갈라져 팔딱팔딱 뛰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것이 정충신의 전략이었다. 적진을 교란시켜 혼란을 가중시키는 사이 산상의 우군이 공격하는 연계작전. 아니나다를까, 변이중 포차의 포사격이 일제히 퍼부어졌다. 정충신이 조원들을 이끌고 구로다 기요마사 군대로 잠입해 들어갔다.

“칼을 쓸 때는 힘을 실어서 찔러라.”

“물론이지라우. 찌른 다음 칼끝을 확 돌려쳐부러야지요! 창사가 너덜거리게요.”

칼 잘쓰는 자객이어서 선발된 자였다. 병조(丙組)의 조원이 긴 밧줄 고리를 던지자 적병을 지휘하는 마상의 우키타 히데이에 목에 걸렸다. 밧줄을 잡아채는데 우키타가 여지없이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는 다리가 부러져서 움직이지 못했다. 우키타의 막료장이 줄을 던진 조원을 향해 칼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단숨에 그의 목도 달아났다.

“일본군복으로 변복한 세작놈들이다! 잡아라!”

그러나 그도 곧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산성에서 총탄과 화살, 돌 파편이 쏟아져내리는데, 그중 화차의 철환이 떨어질 때마다 왜군 무리가 일시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화차에서 발사된 철환들이 왜군 무리를 박살내고 있었다. 적병을 지휘하던 2군 선봉장 이시다 미츠나리가 부상을 당하고 산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산성 좌편에서 처영의 승병부대가 칼을 휘두르며 적진을 파고들었다. 김천일의 의병 부대가 궁시를 날리며 바위를 굴리고, 조방장 조경 부대는 목책에 불을 질러 적진을 향해 굴렸다. 전복에 불이 붙은 왜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깻단 구르듯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다 조사뿌러! 박살내부러!”

김천일 부대의 기라병이 깃발을 좌우로 힘껏 휘날리며 외쳤다. 정충신은 김천일 부대에 합류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하얀 눈썹을 휘날리며 전선을 누비던 김천일이 정충신을 보자 소리쳤다.

“지금 경기 수사(수군절도사)가 배 2척에 화살 수만 발을 싣고 한강을 거슬러오고 있네. 전라도 조운선도 세곡을 싣고 오는데 왜 초병들이 저지하고 있다는 것일세. 화살이 다 떨어져가는데 화급히 배를 끌어올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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