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족”…나이도 언어도 문제없어요

“우리는 가족”…나이도 언어도 문제없어요
<남도일보 나눔 시리즈-② 다문화M오케스트라>
광주여성필하모닉 매주 한차례 재능기부 운영
초등학생부터 주부까지 7개국 79명 단원 활동
타향살이 외로움·워킹맘 스트레스 ‘훌훌~’
실력 ‘쑥쑥’ 늘어 다채로운 공연…희망 전도사

광주여성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재능기부로 운영되고 있는 다문화M오케스트라가 지역사회에 훈훈함을 더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14일 서구문화센터에서 열린 다문화M오케스트라의 제 8회 정기연주회 모습. /다문화M오케스트라 제공
김유정 단장

일본인 니시오카 미도리(49)씨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고국을 떠나온 지 20여 년이 훌쩍 넘었다. 긴 세월만큼 때로는 외롭고 쓸쓸하지만 그럴 때마다 힘이 돼주고 삶의 활력을 찾아주는 것이 있다. 바로 다문화 M 오케스트라다.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입단해 올해 벌써 8년째를 맞았다. 이제는 미도리씨에게 오케스트라 활동은 삶의 일부분이 돼가고 있다. 미도리씨는 “학창시절 음악동아리를 했었는데 마음속으로 언젠가 다시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친구에게 오케스트라에 대해 듣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 이제는 연습하는 날이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도 항상 큰 힘이 된다. 미도리씨는 “단원 중 주부들이 많고, 무거운 악기를 들고 연습을 오가야 해 힘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서로 다독이며 내년에도 활동을 이어가자고 의지를 다진다”며 “개인적으로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기다려 주셔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꾸준히 배울 수 있다는 기회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밝혔다.
 

다문화M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송필례 광주여성필하모닉오케스트라 비올리스트에게 강습을 받고 있는 모습. /광주여성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공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를 연주하는 손효경(40·여)씨는 미국인 남편을 만나 중학생 자녀를 둔 워킹맘이다. 야근하고, 집안일에 주말 출근까지 겹치는 날엔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오케스트라 연습은 빼놓을 수 없다. 단원들과 함께 선율을 만들어 낼 때면 온갖 스트레스를 털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손 씨는 “처음에는 ‘도레미파’ 계이름밖에 몰랐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앞섰지만, 단장님과 선생님 덕분에 어느 순간 연주가 되고, 재미가 느껴졌다”며 “합주를 하고 공연을 무대에 올릴 때는 ‘해냈다’는 성취감도 받는다”고 말했다.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손 씨의 자녀도 오케스트라 활동으로 한층 밝아졌다. 함께 연주를 시작하게 돼서부터는 소통의 창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손 씨는 “딸이 외국인 학교를 다니다 한국학교로 옮기기도 하고, 사춘기때문인지 힘들어했었다. 오케스트라 활동이 많은 도움이 됐다. 같은 일상을 공유하면서 공감대가 생기자 연습을 오가며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나 사이도 좋아졌다. 집에서는 남편을 관객으로 두고 합주를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지난 2012년 12월 14일 광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다문화M오케스트라의 창단연주회 모습. /다문화M오케스트라 제공

◇하나둘 모인 손길…상처를 치유하다

다문화가정이 음악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소통하는 오케스트라가 10여년째 운영되고 있어 지역 사회의 훈훈함을 더하고 있다. 다문화 M오케스트라(단장 김유정·이하 M오케스트라)는 지난 2010년 광주 여성 필하모닉오케스트라(단장 김유정·이하 광주여성필)의 산하단체로 창단됐다. 한국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가정의 상처가 말이 필요 없는 음악으로 치유되길 바라는 취지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10여 명의 광주여성필 단원들이 매주 한 차례씩 무료레슨을 진행하며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있다.

M오케스트라가 지금의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수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악기는 물론 대부분의 부자재도 기증을 받아 마련됐다. 창단 초기 M 오케스트라의 창단 취지에 공감한 한국현악기협회와 한국관악기협회에서 현악기 55대, 플루트 10대를 기증받아 오케스트라의 형태를 갖췄다.

이후 서울과 광주지역 악기사가 저렴한 가격에 악기를 조립하고 수리해주며 힘을 보탰다. 이렇게 모인 정성으로 화정동 청소년문화의 집과 양동 다문화 교육센터 등에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대부분 초보자로 구성돼 완벽한 소리를 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2년 뒤인 2012년 광주여성필의 재능기부와 M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노력이 더해져 첫 창단 연주회를 개최했다.

최근에는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 지역 일반 가정 20여 명도 합류해 함께 교류하고 있다. 현재 일본과 중국, 미국, 러시아, 호주, 필리핀, 한국까지 7개국 79명이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7년 한국현악기협회의 2차 기증(현악기 16대)으로 비올라, 첼로, 바이올린, 클라리넷, 트럼펫, 더블베이스반 등을 폭넓게 운영할 수 있게 됐다.
 

다문화M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김유정 단장의 지휘로 합주를 하고 있는 모습. /광주여성필하모닉오케스트 제공

◇의지하고 소통하며 무대 올라

M 오케스트라는 지난해 8번째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많은 어려움에도 무대에 올라 또 다른 희망을 이웃에게 전하고 있다. 적은 운영비 탓에 일주일에 한 번 3시간이라는 턱없이 부족한 연습 시간과 만만치 않은 공연장소 대관에도 꾸준히 정기연주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첫 공연이었던 광주MBC ‘아시아에서 길을 찾다’ 특집 초청공연부터 ‘2011 아시아포럼’ 개막식 초청 공연, 광주문화재단 ‘레인보우페스티벌’, 광주 예총 제6회 아트페스티벌 개막식 등 크고 작은 무대에도 초청돼 공연을 진행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광주시 다문화 지원사업과 광주문화재단 생활문화예술 활동단체 지원사업에 선정돼 오케스트라 운영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와 함께 보금자리도 변동이 많았다. 2011년에는 빛고을 시민회관에서 이후에는 광산문화예술회관에서 6년간 상주단체로 있었다.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진행하는 레지던스사업에도 참여해 공간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기간이 만료돼 올해는 새로운 거처를 물색하고 있는 중이다.

어려운 환경에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10여 년간 이어온 데는 가족 같은 끈끈함이 있었다. 초기 15개국의 가정이 함께 했는데, 한국어가 서툰 이들이 많았어도 음악이었기 때문에 의사소통의 어려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통역사’ 역할로 나선것도 효과를 톡톡히 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학교들 다니며 한국어를 익힌 아이들이 부모와 광주여성필 단원의 연결고리가 돼줬다. 아이들은 또래들과 어울리며 서로 의지했고, 부모들 역시 교육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고민을 토로하며 소통했다. 덕분에 끈끈한 관계를 쌓아온 아이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M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올해도 계속된다. 지난해 11월까지 연습을 진행하고 현재는 겨울을 맞아 방학 기간이다. 오는 3~4월부터는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 정기연주회 준비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김유정 단장은 “오케스트라운영은 힘든 만큼 보람도 크다. 초창기 선생님으로 함께 한 광주여성필 단원들이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며 씨앗을 뿌리고 있고, 많은 가정이 오케스트라 활동을 통해서 행복을 느끼고 감사하다고 할 때 가슴이 벅차다”며 “매년 그렇지만 올해는 특히 운영비 마련에 대한 고민이 깊다. 하지만 다방면으로 방법을 모색해 많은 이들에게 언제나 문을 열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한아리 기자 har@namdonews.com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