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3장 행주대첩과 전라도 병사들<269>

“배가 어디쯤 와있습니까.” 정충신이 물었다.

“한강 하류쪽 마곡에 묶여있다고 하네. 왜 초병들이 매복해 감시하고 있으니 묶여있네. 무장 병력이 없어서 대응 못하고 있으니 응원군을 보내 적을 무찌르고 가져와야겠네.”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정충신은 수륙병(水陸兵) 중에서도 노를 잘 젓는 자를 고르고, 배를 엄호할 사수와 궁수 열을 골라 즉시 한강 하류로 배를 띄웠다. 이산포를 지나 김포나루를 거쳐 마곡에 이르자 그 사이 왜병은 도망가고 없었다. 행주성 싸움에서 밀리고 있는 것을 보고 도망간 것이 분명했다. 신시(申時) 쯤에 경기 수사의 배 두 척과 전라도 조운선이 길삼봉이 진을 친 포구로 들어왔다. 길삼봉이 배들을 맞으며 외쳤다.

“인자 저것들 완전히 보내버려야제. 활촉에 솜을 달아 불을 붙여서 쏘란 마시. 적진을 깨끗하니 꼬실라버리랑개.”

산성의 각 부대에 화살이 배급되고, 세곡이 산처럼 쌓였다.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무기와 식량을 보급받으니 저절로 힘이 솟는 것이었다.

“장군, 화살에 솜을 달아 불을 붙여서 쏘도록 하십시오.”

정충신이 길삼봉의 얘기를 그대로 옮겼다. 권율 장군이 각 부대원에게 지시했다.

“화살이 수만 발이다. 각 부대 궁수는 활촉에 솜을 달아 불을 붙여서 왜 진지로 쏘아라.“

처영 부대가 불붙은 활을 쏘아올리자 들판이 확 불이 붙어 하늘로 올랐다. 김천일 부대, 선거이와 조경 부대, 권율의 관군이 똑같이 불화살을 퍼붓자 왜 진영이 금방 불바다가 되었다. 왜병들은 추위를 막기 위해 들판의 짚덤불을 가져다 천막 바닥에 깔아놓았는데, 그것이 화력 좋은 불더미가 되었다. 불 맞은 병사들이 버둥거리다가 하나같이 쓰러졌다. 변이중 화차의 화포가 확인사살하듯 철환을 날리자 왜 진영이 초토화되었다.

“다이고노 고오타이!(대오 후퇴!), 다이고노 고오타이!”

왜의 장수들이 부상당한 몸으로 잔병들을 이끌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봉화가 기운차게 올랐다. 마침내 전쟁은 끝이 났다. 정충신이 목책으로 올라가 권율 장군에게 전투상황을 보고했다.

“유격전을 치른 뒤 세곡선을 가져왔나이다.”

“너의 유격대가 적진을 교란시키니 전쟁이 한결 수월해졌다. 장하다!”

“하지만 제 막료장이 죽고, 을조와 병조의 대원들이 적의 칼에 당했습니다. 도망가는 저것들을 추격해서 마지막 한 놈까지 처치해버릴 것이오이다!”

권율이 한참 생각하더니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대인은 도망가는 적병의 등을 쏘지 않는다. 다만 한양 쪽으로 가서 길을 막아야 한다. 한양 탈환의 숨통을 열었으니 그 길목만 지키면 된다.”

“지금 요절내버리는 것이 마지막 숨통을 조이는 것 아닙니까요?”

“아니다. 저들의 낡은 창은 이제 삼베도 못뚫는다. 긴 전쟁에 지쳐서 전과를 내긴커녕 목숨을 구걸하는 꼴이잖느냐. 그런 패주 장수를 치는 것은 대인의 도리가 아니다. 충신아, 저 자들이 패배한 이유를 알겠느냐?”

“우리의 전술전략이 주효한 덕분입니다. 한 점 흐트러짐없이 우리 군사가 단결하여 움직인 성과입니다.”

“그렇다. 전라도 군사들의 일사불란한 전투대형이 대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저들의 패인이 또 있다.”

“무엇입니까.”

“저들은 총알받이로 투항군을 앞세운 것이 절대적 패인이다.”

검게 탄 그의 얼굴이 횃불에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비겁한 전술은 실패한다. 투항군을 앞에 세워 총알받이로 삼겠다니, 그 전쟁이 승리하겠느냐. 떳떳치 못한 전쟁은 명분도 실리도 얻지 못하는 법, 어떤 전쟁이든 도덕적 정당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장들은 투항병을 전면에 세우고, 이유도 명분도 없이 공격했다. 그들이 이 땅에서 싸워야 할 이유가 뭔가. 명을 치는 방편이라고 했지만 과연 그 욕망을 채울 수 있겠느냐. 날뛰는 것만이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 대신 나의 군사들은 정의롭다. 기병(起兵)의 명분과 구국의 순결성이 가을하늘처럼 맑고 푸르다. 나의 전라도 군사들은 한결같이 정의로우니 어디서건 그 정신으로 일당백의 투혼을 발휘했다. 어려움에 처하면 다같이 힘을 모았다. 선거이, 변이중, 김천일, 조경, 처영이 군사를 모아왔다. 그래서 내 일찍이 승리를 알아보았다. 숫자가 많고 적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혼이 승리의 견인차이니, 한 사람이 열 사람을 당하고, 열 사람이 백 명을 제압하는 것이다. 정충신 너도 달려와 합류하니 적의 3만 병사가 한갓 휴지조각이 되었구나.”

권율 부대 선봉대와 처영의 의승군이 한양으로 진군했다. 이들이 절두산에 이르러 행주산성을 바라보니 수만 횃불이 장엄하게 명멸하고 있었다. 불빛은 산성에서부터 김포나루-이산포-고양-파주-개풍군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백성들이 행주성 싸움의 승리를 횃불로 환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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