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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3장 행주대첩과 전라도 병사들<272>

선사포로 귀임하자 소실 하양 허씨가 반기었다.

“나는 서방님이 이렇게 훌륭한 인물인 줄 몰랐소.”

그녀가 엉뚱한 찬사를 보냈다.

“내가 행주성 싸움에서 활약한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이오?”

“아니어요. 서책에서 서방님의 행로를 읽었나이다.”

“행로라니? 서책에 내 행로가 그려진 것이 있었다고?”

“그렇사옵니다. 서방님이 써놓은 서책을 읽어보니 이야기 책보다 더 자미가 있었나이다.”

별 싱거운 사람이 다 있나, 하고 정충신이 하양 허씨를 바라보았다. 훌륭한 인물이라고 했으니 그는 행주성 싸움에서 크게 전과를 올린 것을 보고 칭찬한 줄 알았는데 생뚱맞게 서책을 보았다고 하는 것이다.

정충신은 광주 목사관 시절, 관아의 대소사는 물론 집안에서 일어난 잡사들을 낱낱이 일지에 적었다. 다급한 전쟁 중에도 진중일기를 쓰는데, 그것은 어려서부터 익힌 일관된 습관이었다. 그것을 문자를 아는 소실이 주인없는 널널한 시간에 빠짐없이 읽었던 모양이다.

“서방님이 송사(訟事)를 해결한 것을 보고 참으로 명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송사 해결?”

광주 목사관에 송사가 여럿 들어왔는데, 그중 일부는 정충신이 나서서 해결했다. 어느날 한 사내가 잃어버린 여자를 되찾아달라고 찾아왔다. 사정을 듣고 보니 딱했다. 권율 목사가 해결책을 찾느라 고민하고 있었다. 소원을 들어주어야 하는데 마땅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때 정충신이 권율 목사 앞에 나섰다.

“사또 나리, 꽃이 뒷간에 떨어졌으니 이미 그 향기를 잃었나이다(花落?中 先失其香).”

“그 말이 무슨 뜻이렸다?”

권율 목사가 물었다.

“잃어버린 여자를 데려온다고 하였으나 그 여인은 벌써 다른 남자 품에 안겼습니다. 그런 여자를 데려와봐야 또다시 나갈 것이옵니다. 한번 바람난 여자는 기회가 나면 또 나가거든요. 그러면 저 남자는 또다시 엿되는 것이옵니다.”

“어호, 그래서?”

“남자의 상심을 집나간 여자를 되찾아주는 것으로는 해결난망입니다. 그럴 바에는 아예 잊고 새 여자를 맞이하는 것이 낫다는 뜻이옵니다.”

생각해보니 그럴 듯했다. 권율이 고개를 끄덕이고, 동헌 뜰에 무릎 꿇고 하명을 기다리고 있는 사내를 향해 말했다.

“너의 고약한 마음을 사또로서 심히 동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금방 우리 젊은 관원의 말대로 한번 새는 바가지는 또 새는 법이다. 데려온다고 하더라도 세상에 천사같은 부부는 없으니 너는 어느 땐가 여인과 다툴 것이다. 이러저러한 다툼 끝에 너는 홧김에 ‘저 년이 남의 사내와 붙었어?’ 하는 증오심으로 여인을 두둘겨 팰 것이다. 그러면 여인이 그걸 핑계대고 또 집을 나갈 것이다. 그런 것이 반복될 것이니 집안이 온전하겠느냐?”

“어찌 그리 잘 아십니까요. 실은 그년이 돈을 축내고, 밥은 안하고, 신경질 부리며 대들기만 하여서 내가 패주었습죠. 남의 사내와 붙어서 살았던 것까지 생각하니 속에서 불덩어리가 솟았지요.”

“거 봐라. 남자란 인격이 있어도 질투 앞에선 무력하다. 더군다나 장삼이사(張三李四)인 네가 마음 넉넉할 리는 없고, 그래서 함께 살아봐야 화를 끓이고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니 싹둑 끊고 조신한 여자를 새로 얻을 일이로다.”

“저한티 그런 여자가 오겠습니까요.”

“그것은 내가 알아보마.”

권율이 효천과 남평 쪽에 남평문씨 가문의 조신한 과부가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수소문하여 사내에게 그 여인을 붙여주니 행복하게 잘 살았더라는 이야기다.

“헌데 물어볼 말이 있소.”

“무슨 말이옵니까.”

“저번 평양성에서 명 사신이 은 수만 냥을 내놓으라고 협박할 때, 그를 물리치려면 암내난 말을 내놓으라고 지혜를 내지 않았소? 사신의 호마가 암컷일 수도 있는데 암내난 암말을 앞세우라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하였소. 무슨 신통력이 있었던 것이오?”

그러자 하양 허씨가 웃으며 말했다.

“사신들은 자고로 수천 리 먼 길을 가야 하니 힘 좋은 숫말을 타고 다닙니다. 힘 좋은 숫말일수록 암내난 암말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지요. 기어이 암말을 보고 가려고 발광을 합니다. 주인이 들어주지 않으면 마상에서 주인을 떨어뜨리는 왜말로 곤조를 부리는 말도 있답니다. 집 밖에 마방이 있어서 내 일찍이 말들의 성정을 알아보았지요.”

그때의 눈썰미가 전략이 되어 나온 셈이다.

“그러면 소실은 왜 꼭 군교의 처첩이 되겠다고 했소?”

그러자 그녀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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