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3장 행주대첩과 전라도 병사들<273>

하양 허씨는 부끄러운 것인지, 말하기 곤란하다는 것인지 여전히 손으로 입을 가리고 곁눈으로 정충신의 눈치를 살폈다. 이럴 때는 여자 꼴이 나왔다.

“무슨 못할 말이 있소? 어서 말해보시오.”

“궁금하셨습니까.”

“그렇소.”

“그것은.” 하고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양 허씨는 열다섯에 첫 결혼을 했다. 문약의 어린 선비 신랑이 어느날 잠자리에서 죽어버렸다. 아니, 아내와 잠자다 죽다니, 양반집 귀한 자식이라 당장 난리가 났다.

“이 무슨 변고인고?”

시아비인 진사 어른이 땅을 치며 통곡했다. 잠자리를 같이하다 남편이 죽으니 당장 복상사한 것이라고 소문이 났다. 그리고 ‘불길한 여자‘ ’재수없는 년’ ‘서방 잡아먹는 년’이라는 욕이 집안팎에서 터져나왔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도 말했다.

“쎈 여자여.”

“여자 배 위에서 죽는 것이 최고로 좋은 극락사라고 하더만...”

“아닐세, 성교 중 죽는 것을 색풍이라고 하고, 상마풍(上馬風)이라고도 하네. 성교 후 사망은 하마풍(下馬風)이고 말이여. 지체있는 사람이면 복상사라도 이렇게 점잖게 문자를 좀 써야지.”

“죽은 자의 양물이 서있는가, 죽어있는가를 보면 사망 원인을 알 수 있네. 복상사면 대부분 양물이 몇 시각 발기돼있다네. 여성 역시 놀라면 질 경련이 일어나서 양물이 빠져나오질 못하게 조개처럼 꽉 물고 있네. 그런 것부터 살펴봐야지.”

“여자가 근육이완제를 썼다카던데?”

“아니지. 그럴 땐 방광 경락의 기혈을 소통시키도록 외음부에 침을 놓아야지. 여자의 기혈을 통하게 하면 질 근육이 풀어져서 남자의 양물이 빠져나온다니까.”

웃자는 것인지, 놀리는 것인지, 벼라별 말들이 먼지처럼 온 동네를 떠돌아 다녔다. 하양 허씨는 애먼 사람을 살인자로 몰고 놀리기까지 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남편이 죽었으니 억울하고 슬퍼서 눈물 바람으로 나날을 보내지만, 오해는 풀고 싶었다. 어떻게든 재가해서라도 서방잡아먹는 년이라는 말을 물리고 싶었다. 부모님 보기가 딱한 데다 억울함을 덜기 위해 친구들을 품놓아 재가 자리를 알아보았다. 마침 노총각 혼처가 나왔다. 노총각은 문사였지만 허우대가 멀쩡했다. 첫 결혼이 불미스럽게 돼버린 그녀는 헌신적으로 새 남편을 섬겼다. 한 달포쯤 지났을까. 그도 자고 나더니 시체가 되어나왔다. 허우대 멀쩡한 정정한 사람이 하루 아침에 시체로 나오니 이제는 친정에서까지 난리가 났다.

“저 년이 남자 잡아먹는 요물이야. 아니면 요괴렸다?”

친정아버지의 노여움은 컸다. 마을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했다.

“방사를 어떻게 했길래 들어간 놈마다 시체로 나오는 것이여?”

“괴이한 일이로다. 필시 액신이 붙은 거여. 장군귀신이 아니면 저것을 잡질 못하겠어.”

그녀는 절대로 자신은 그런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보이고 싶었다. 그녀는 친정을 떠나 외숙부 집으로 가 기거하다가 이윽고 정충신의 처첩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소첩이 꼭 군교의 처첩이 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문관은 제 명대로 못살기 때문이지요. 억울함을 꼭 풀고 싶어요.”

“문관 신랑은 제 명에 못사니 무관이라야 된다...”

정충신이 하필이면 자신이 걸렸나 싶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사람들은 저를 월국의 서시(西施)라고 부른답니다.”

“아니 서시라면 양귀비, 왕소군, 초선과 함께 중국의 4대 미인이라고 하지 않소? 환장하겠네.”

남자 같은 커다란 덩치에 우렁우렁한 목소리, 장군이라면 딱 맞을 그녀가 스스로 서시와 비교하다니, 코웃음이 나왔다.

“제 말을 들어보시어요.”

월나라에 사는 서시의 아버지는 나무꾼이고 어머니는 빨래를 빠는 직업인 완사(浣沙)였다. 서시도 어머니를 따라 시내에서 빨래를 하며 생활했는데, 어느날 나라에 잡혀갔다.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와의 싸움에서 대패한 뒤 오왕 부차의 볼모가 되어 3년간 치욕적인 포로생활을 하고 돌아왔다. 복수의 칼을 간 구천은 부차가 미인계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전국에 신하를 풀어 미인을 모조리 데려왔다. 키, 몸무게, 피부색깔, 성기의 칫수, 치구, 음순, 음핵, 질의 질감, 처녀막까지 검사해 최종 뽑힌 여자가 바로 서시였다. 공물로 오나라ㅏ에 서시를 보내니 왕 부차는 과연 서시의 미색에 빠져 나랏일을 돌볼 새 없이 밤낮으로 방사에만 빠졌다. 몇 달 지나자 사리판단이 흐려지고 말도 바보처럼 하고 침을 질질 흘렸다. 아편을 하고, 한약과 뱀을 고아먹고 별 짓을 다했지만 총기는 갈수록 흐려지고, 몸은 허우적거렸다. 그런데도 서시만 보면 올라탔는데, 어느날 구천이 들이닥쳐서 부차를 죽이고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서시는 오나라를 멸망시켰지만, 저는 남편들을 멸망시켰습니다.”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정충신이 투덜댔다. 그러나 소실을 뜯어보니 귀여운 면이 있었다. 내가 잘못 본 건가?

“그럼 나하고 합궁 한번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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