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있는데 환자 돌볼 의료진은 턱없이 부족”

<핫이슈-지역 응급 의료체계 이상 없나>
“병원은 있는데 환자 돌볼 의료진은 턱없이 부족”
광주 권역응급의료센터 응급실 병상 포화 ‘전국 최고’ 
전남권역 환자들까지 몰린 탓…환자들 병원 찾아 삼만리
전남, 10만명당 응급의학 전문의 1.6명…광주보다 3.4명 적어
서비스 질적 하락 우려…“지원 통한 의료 환경 격차 줄여야”

조선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들이 환자들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전남 해남 출신인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최근 극심한 과로로 추정되는 심정지로 사망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시민들에겐 다소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한 한 의사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그가 국내 응급의료 체계를 세운 구심점 역할을 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중증응급환자를 분류하고 환자를 수용할 각각의 병원들을 지정하는 시스템 마련에 헌신했다. 응급헬기 도입과 응급의료상황실 구축에 앞장서는 등 낙후된 국내 응급의료 체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며 개선하려 했던 응급의료시스템. 하지만 그의 노력과 별개로 지역 응급의료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은 것이 현주소다.

◇광주·전남 응급의료 편차

현재 운영 중인 국내 응급의료기관은 지역별 인구수, 지리적 위치 등 사항에 따라 크게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분류된다.

광주시와 전남도에 따르면 현재 광주광역시 응급의료기관 수는 권역응급의료센터 2곳, 지역응급의료센터 3곳, 지역응급의료기관 15곳이다. 전남은 권역응급의료센터 2곳, 지역응급의료센터 3곳, 지역응급의료기관 33곳이다. 이밖에 중증외상환자를 위한 전문적이고 신속 정확한 진료로 예방 가능한 외상 사망률 감소를 위해 광주·전남·전북지역 권역을 포괄하는 권역외상센터가 별도로 전남대병원에 설치돼 지난 2015년부터 운영중이다.

숫자로 보면 각 지역별로 1개 이상 응급의료기관들이 들어서 있어 양적인 면에선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광주와 전남의 응급의료 편차는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환자를 치료할 의료진의 수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광주의 경우 인구 100만명 당 응급의료 기관수는 13.7곳으로 광역시 중 가장 높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는 73명, 인구 10만명당 5.0명으로 광역시 중에서 가장 높으며 전국 평균 3.3명보다 1.7명이나 많다. 응급의학 전공의 수도 인구 10만명당 1.5명으로 전국 평균보다 0.3명 많은데 이는 광역시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반면 전남의 응급의학 전문의 수는 불과 30명, 인구 10만명당 환산할 경우 1.6명이다. 응급의학 전공의 수도 19명으로 인구 10만명당 1.0명꼴에 불과했다. 병원은 있는데 환자를 돌볼 의료진은 턱없이 모자란 셈이다. 의사 부족은 수많은 응급환자들이 다른 병원을 찾아 떠돌게 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전남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전경.

◇대학병원으로 몰리는 응급환자

지역별 응급의료의 질적 격차는 비대칭적 환자 쏠림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광주 지역 대학병원들의 응급실 환자 과밀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광주의 경우 응급실 이용률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2017년 기준 응급실 이용자 수를 인구 1천명 당 이용률로 환산해 타 광역시와 비교하면 광주는 약 301명으로 전국 평균 201명보다 100명이나 높다. 이는 전체 광역시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치다. 특히 지역 대학병원이 주축인 권역응급의료센터의 경우 응급실 병상 포화지수도 108.9로 전국 평균 (66.7)에 비해 훨씬 상회하고 있으며, 특·광역시 중에서도 두 번째로 높은 실정이다.

이는 광주 내 1~2차 병원들은 물론 전남 등 타 지역 병원에서의 응급환자들까지도 광주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집중되고 있어서란 것이 지역 의료계 설명이다. 실제 전남의 경우 3대 중증응급(급성심근경색, 뇌졸중, 중증외상 등)환자 수 비율(전체 환자 수 대비)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도별로 2015년 3.4%에서 2016년 5.9%, 2017년엔 6.1%까지 상승했다. 의사가 부족한 전남에선 응급상황에 처한 환자들을 광주로 내려보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광주 한 대학병원의 경우 하루 평균 응급실 환자 유입 수는 1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10~20%는 전남 등 타 지역 환자란 분석도 있다.

◇응급환자 아닌 응급환자 응급실은 포화상태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KTAS)기준에 따라 분류하면 1등급부터 3등급까지는 ‘응급’, 4~5등급은 ‘비응급’으로 구분한다. 1, 2등급은 즉시 응급실 내부로 안내돼 응급의학과 진료가 진행되며, 3등급 이하의 환자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진료대기순서에 따라 예진한다. 하지만 이러한 환자 등급별 구분 규정이 응급실에선 무용지물이다.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은 물론 증상이 가벼운 환자들까지 뒤섞여 규모가 큰 병원 응급실로 몰리기 때문이다.

일단 응급실로 들어온 환자들은 나가려 하지 않는다. 일명 ‘응급실 버티기’다. 이는 비용 절감과 병원 입원을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한 꼼수 때문이다. 현 규정상 1~3등급 환자는 기존 본인 진료비 부담률은 20%다. 100만원이 나올 경우 20만원만 자부담 하면 된다. 반면 4~5등급 환자는 50% 이상을 자부담으로 내야 한다. 응급실에서 6시간 이상 머문 환자는 외래가 아닌 입원으로 분류돼 진료비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외래 환자들보다 병실을 구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편하다. 상태가 나아져도 응급실에서 나가지 않게 되는 이유다.

권역응급의료센터들의 경우 12시간을 기준으로 5~7명 정도의 응급 의료진들이 근무하는데 이들은 이렇게 몰린 환자들을 일일이 살펴보고 중증도를 판단해야 한다. 이로 인해 정작 중증 환자의 치료 시기는 상대적으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통상적으로 의료계에선 심정지 후 4분, 호흡 정지 후 5분, 출혈 시작 후 1시간 이내로 치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골든타임’은 끝난 것으로 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응급실 환자 과밀 현상은 병원 치료 시스템 전체의 과부하도 초래한다. 환자가 밀리는 탓에 타 과의 치료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역 한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선 흉부외과 3명의 전문의가 하루 수십명 이상의 응급환자와 외래환자를 다 처리해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술 환자가 발생할 시 수술이 필요한 또 다른 환자는 방치 아닌 방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권역응급의료센터조차 또 다른 병원으로 다시 환자를 전원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다. 지난 2016년 전북 전주에 거주하는 두 살배기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지역 한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전원 왔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 수 십 곳을 전전하다 숨진 사고 역시 이런 원인 때문이었다.

지역 한 의료인들은 “애초 119 소방 응급구조사들이 환자를 옮길 때 환자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고 우선 가까운 병원으로 옮기고 있는 실정이다. 시민들 역시 응급 상황이 아닌데도 무작정 응급실로 가려는 경우가 많다”며 “항상 응급실은 꽉 차있고 베드는 부족하다. 응급실에서 응급환자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남 지역의 경우 전문의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겨우 1명이 모든 환자를 돌봐야 하는 실정이다. 의사 쏠림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가 나서 기피지역에서 근무할 경우엔 보다 지원 규모를 확대하는 등 현실에 맞는 지원을 통해 지역 간 응급의료 격차를 줄여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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