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3장 행주대첩과 전라도 병사들<275>

군막에 이르러 군사를 점검하니 행주성에서 싸운 척후 병력만 손실이 있었을 뿐, 나머지는 그대로였다. 전력 손실이 없는 것은 그만큼 미리 강훈련을 통해 강군대오를 갖췄기 때문이다. 해안과 산을 살피고 돌아온 군기병이 군막으로 달려와 보고했다.

“지금 가도에 묶인 명인(明人)들이 여러 척의 조공선을 훔치고 무기까지 갖춘 뒤 뿔각을 불면서 온통 섬마을을 분탕질하고 있다고 합니다. 노략질을 하는 자들입니다. 요동에서 왈패로 거들먹거리는 자들임에 틀림없으니 붙잡으면 요동에서도 통쾌하게 여길 것입니다. 당장 잡아다가 성명과 주거 및 나오게 된 원인을 힐문하여 명국에 압송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니구산 잔당임에 틀림없다. 니구산이 사라진 뒤 잔적들이 다시 뭉쳐서 해적단을 꾸려서 못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놈들은 바닷가 사람들이 말려놓은 생선과 산에서 캔 산삼, 약초들을 훔치거나 빼앗고 여자를 겁탈하고 있습니다. 우리 수군이 당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니구산, 그러니까 등삼초는 중국 사신으로 온 형 등일초가 정충신과의 담판으로 풀려난 자다. 그와 은 팔천냥과 맞바꾼 것이다. 군기병이 다시 말했다.

“운암산과 어랑산 고가산 천두산 일대에는 명의 잔병들이 숨어들어 산적이 되어서 마을을 습격하고 있습니다. 뭍에는 명의 잔병, 바다에는 요동의 왈패들이 깽판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힘이 없으니 별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남자들이 징병에 차출되니 노인과 부녀자, 어린 자식들만이 마을에 남아있었다. 치안 유지가 어렵고 주민 보호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니 별별 것들이 무리지어 다니면서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항아리 모양의 선사포는 중국에 보내는 조공선이 출발하던 곳이고, 전쟁중이라 조공선이 포구에 정박해 있는데, 이 자들이 묶인 배를 쇠사슬을 풀어 훔쳐간 뒤 해적질을 하고 있었다. 물건을 약탈하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어린 소녀까지 납치해 주린 성욕을 채우고 있었다. 입지적 조건이 좋아 포구로 발달한 것이 산적과 해적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런 사정을 소실이 소상히 꿰고 있었다. 소실의 예언이 맞아떨어진 것이 기이했다. 그는 잠시 소실을 생각했다.

“나를 서방님의 동지로 받아들이셔요. 내 병법과 예시력은 백개, 천개가 넘사옵니다.”

그러니까 이성의 여자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이었다.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군사 진용을 재정비해 산적과 해적을 물리칠 방책을 연구하는 사이 며칠이 자났다. 고가산 천두산 운암산을 살피고 돌아온 척후병사가 정충신의 군막으로 뛰어들어와 보고했다.

“첨사 나리, 상감마마께옵서 환도하신다는 소식이옵니다.”

“환궁하신다고?”

그러나 여러모로 생각해보니 여건이 맞지 않았다. 경복궁과 창덕궁 등 궁이라고 생긴 것은 모두 불에 타버렸다. 게다가 중요한 서적은 물론 호적·병적·서얼 전적까지 모두 불에 탔다. 사무를 볼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왜병이 태운 것이 아니라 도망간 왕을 비난하던 백성들이 홧김에 불살라버린 것들이었다. 환궁하더라도 당장 거처할 곳이 없는데, 어떻게 돌아간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렇더라도 환도는 백번 옳은 일이다. 볏짚을 베고 잔들 왕이 아닐 것인가. 백성 곁에 왔다는 것으로 더많은 존경을 받고, 나랏님의 체신이 설 것이다. 나라의 기둥이자 대들보가 그림자라도 비추면 백성들은 환호할 것이다.

“지금 전라도순변사 권율 장군은 행주산성에서 떠나 병력을 이끌고 파주산성으로 이동하셨다 하옵니다. 거기서 도원수 김명원 장군과 성을 지키면서 정세를 관망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선거이, 김천일, 처영, 조경 장군이 따라갔는가?”

“각기 자신들의 부대로 원위치 하셨는 바, 남으로 패주하는 왜군을 뒤쫓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후방이 문제죠. 명의 잔병들 외에 왜군에서 탈영한 항왜(降倭)들도 패악질한다는군입쇼.”

항왜들은 군사들이 굶고, 기합은 늘어나고,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으니 절망한 나머지 도망가거나 조선에 투항하는 자들이었다. 명분도 없는 싸움, 개죽음 당하느니 도망치자. 하지만 조선군이 이들을 거두어 재편성하면 전과를 배로 끌어올릴 수 있는데, 받아들일 여력이 없었다. 권율은 이치·웅치전·독산성전·남태령전에서 이들을 받아 써먹으니 적잖은 전과를 올렸다. 역시 장수의 지휘 능력에 따라 인적 소요를 유용하게 사용하면, 큰 전과를 올리는 것이다. 적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니 아군은 배의 군사력을 확보하는 셈이고, 실제로 그 배의 전과를 냈다.

한편 왕은 의주 땅을 떠난다고 했지만 막상 떠난다고 해놓고는 미적거렸다. 이러니 궁 사람들이 죽을 판이었다. 왕이 떠난다고 하면 모두들 짐을 꾸리는데, 하루 아침에 번복된다. 짐을 풀고 살림을 하는데, 또 느닷없이 떠난다고 짐을 싸라고 한다. 그러기를 몇차례 반복되니 하인들부터 불만이 터져나왔다.

“장부일언중천금(丈夫一言重千金)인데, 왜 이려?”

“왜군이 도성에 남이있다는 첩보를 받고 그러하는 것이지요. 가면 붙잡혀 죽는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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