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칼럼>우수(雨水)에 찾아온 정월대보름

범은희(광주지방기상청 기획운영과장)

아직은 겨울이 끝나지 않았지만 바람이 약한 날, 낮 동안에는 햇살이 제법 따뜻하다. 지난 12월 광주전남은 평년과 비슷한 기온 분포를 보였지만, 올해 1월에는 평년보다 평균기온이 1.5도 높았으며, 온화한 기운은 2월에 들어서서도 이어지고 있다.

2월 19일은 정월대보름이자 24절기의 두 번째에 해당하는 우수(雨水)이다. 우수라는 말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말이니 이제 추운 겨울이 가고 이른바 봄을 맞게 되었다는 뜻이다. 때마침 봄소식을 알리듯 내리는 비도 반갑다.

정월대보름은 음력 1월 15일로, 농사를 짓던 우리 조상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명절이다. 첫 보름달이 뜨는 시간에 한해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동제를 지냈으며, 보름날 아침에는 오곡밥을 먹고, 부럼, 묵은 나물, 귀밝이술, 팥죽 등을 먹었다. 연날리기와 지신밟기, 쥐불놀이, 달집 태우기 등 다양한 놀이를 통해 한해의 액을 보내고 안녕과 행복을 빌었다.

쥐불놀이는 논밭둑에 불을 놓음으로써 쥐와 해충을 제거하였으며, 달집 태우기는 짚단과 생소나무 등을 무더기로 쌓아올려 달집을 세운 다음, 불에 태워서 놀며 풍년을 기원하며 소원을 빌었는데 모두 농경문화에서 비롯되었다.

쥐불놀이를 위해 깡통에 못을 박아 구멍을 뚫고, 철사로 줄을 만들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구멍 뚫린 깡통에 마른 나뭇가지를 가득 채우고 불을 붙여 돌리면 보름달을 닮은 원형의 불꽃이 만들어졌다. 더 화려한 불꽃을 보여주기 위해 남보다 더 큰 깡통을 구하려 애썼던 기억도 아련하다.

보통 2월은 매우 건조하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건조주의보나 건조경보가 발효 중일 때가 많다. 매년 정월대보름 즈음에 하는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풍등 날리기 등으로 화재가 발생하기도 해, 이에 대한 주의가 필요했는데 올해는 비 소식으로 인해 화재 걱정은 없겠다.

정월대보름에 하는 특이한 놀이 중 하나로 ‘더위팔기’가 있다. 아침에 만난 사람의 이름을 부르거나 적당한 호칭을 하여 대답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더위” 하고 소리친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답한 사람에게 그해 여름의 더위를 팔아넘기면, 파는 사람은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믿었다. 여름 뙤약볕 밑에서 많은 농사일을 해야 하는 조상들에게 더위는 크게 염려되고, 피해가고 싶은 현상이었을 것이다. 특히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던 당시에는 더위로 인한 탈진은 건강은 물론 농업의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졌을 터이니, 언어의 주술적 힘이라도 빌려 어떻게든 더위를 예방하고 싶은 열망이 만들어낸 세시풍속이 아닌가 싶다.

광주지방기상청은 1월에 한여름의 무더위를 예방하려 노력한 조상들의 지혜를 이어 받아 여름철 폭염에 대비하고자 한다. 작년까지 기반구축과 시험운영해왔던 폭염 영향예보를 올해 6~9월에 정규서비스로 운영한다. 광주ㆍ전남지역 맞춤형 영향정보를 관심, 주의, 경계, 심각 등 위험수준에 맞춰 제공할 예정이다.

올 여름 너무 덥지 않게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월대보름에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더위를 팔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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