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4장 환도(還都)<279>

“밖에 무슨 소리냐?”

기생들 몸을 더듬던 꿩 깃 사내가 반사적으로 귀를 세우더니 물었다.

“별 것 아닙니다. 우리끼리 재미나게 노니까 사내라고 부엌에서 꼬장부립니다요. 신경쓰지 마셔요. 제가 쌍검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거 좋다 해. 어서 추어라.”

신경 안쓴다는 듯 두목이 부추겼다. 하긴 가도는 도주(島主)도 뭣도 다 도망가버렸으니 그들이 주무르는 세상 아닌가. 왜놈 말로 어떤 놈이 겐세이할 것인가.

기생들이 쌍칼을 품에서 뽑아들어 양손에 쥐고 방바닥을 구르며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진홍색 치마와 남색 저고리를 입고, 얼굴은 짙은 연지 화장에 백분을 덧씌웠으니 치맛자락 휘날리며 춤을 출 때마다 지분 분말이 송화가루처럼 흩뿌려져 몽환적이었다. 몸을 흔들 때마다 옆구리에 찬 향낭에서 그윽한 사향이 퍼지는데 그러잖아도 취한 해적들은 더 해롱거렸다. 그런데 눈썰미가 있는 젊은 꿩 깃 사내가 기생들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는 듯 소리쳤다.

“이것들 비녀가 없다 해!”

가채를 쓰고 변장을 했으니 짧은 머리에 비녀를 꽂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년들, 수상하다 해. 뭣하자는 짓이냐?”

그가 칼을 찾았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기생들의 손에 칼이 쥐어져 있는데, 그들이 순식간에 무사로 돌변해 자기 짝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하, 당했다 해! 내가 벌써 가슴이 없다 했는데...”

“나도 이 자들 어깨가 넓다 했지!”

“너희들 정체가 뭐냐?”

두목이 으름장을 놓았다. 대답 대신 기생들이 “얍!”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해적들 멱을 따고, 베잠방이 사이로 드러난 배통에 칼을 쑤셔박았다. 부지부식간에 방바닥에 시체가 널부러졌다. 기생들은 선사포 진에서 유격 백병전 훈련을 받은 정예 육병(陸兵)들이었다. 기생으로 변복해 작전을 편 것이었다. 이들은 얼굴이 곱상하지만 검술에 능하고 각목 하나로 장정을 단숨에 제압하는 무술을 지닌 병사들이었다. 정충신이 특별히 훈련시킨 결사대들이었다. 두목이 어찌 살아서 구석으로 몸을 피한 뒤 후다닥 문밖으로 튀었다.

“저놈 잡아라! 두목이닷!”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문 밖에 대기하고 있던 정충신이 장검을 허공에 날리면서 기합을 넣는 것과 동시에 달려나오는 두목의 얼굴을 그었다. 다시 장검을 홰도리쳐 휘둘러서 그의 목을 쳤다. 야자 열매처럼 두목의 두상이 마루바닥에 툭 떨어져 나뒹굴었다. 그의 장검은 막대 대신 술청에서 술항아리를 젓던 바로 그것이었다. 단숨에 적들이 일망타진된 것을 확인한 정충신이 기생 중 한명에게 지시했다.

“쇠골이는 밖에 나가 횃불을 올려라.”

쇠골이가 기생 옷을 벗자 보병 군복이 드러났다. 그가 밖으로 나가서 횟불을 올리자 연대산 골짜기에 대기하고 있던 선사포 유격병들이 와-, 함성을 지르며 해적 소굴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이제나저제나 횃불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꼼짝 마라.”

졸지에 숫자로 제압하지만 산적들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서로 주먹과 주먹, 무술과 무술, 칼과 칼이 교환되었다. 그러나 중과부적의 세에 밀려 해적들이 일방적으로 당했다.

주막 마당에 우뚝 서서 산상을 바라보던 정충신이 외쳤다.

“이 작전은 주모가 돠와주어서 얻은 전과다. 그러나 연대산 소굴을 쓸어버려야 작전이 완성된다. 지금 응원군으로 출발한다.”

“그러면 안되지요.”

주모가 당장에 울먹이며 대들었다.

“왜 그러시오?”

“나를 놔두고 떠나시면 어떡해요. 군사들이 이렇게 떠나고 나면 잔적들이 다시 나타나서 나를 가만두지 않을텐데요. 나는 살았다 할 것이 없습니다요.”

“그래서 후환이 없도록 씨를 말리러 산적들 소굴로 올라가는 거요. 완전 소탕작전이오. 제거하고 돌아올테니 고기나 삶아두쇼. 협조해주어서 고맙소.”

연대산은 생각보다 험준한 산이었다. 소굴에 이르니 해적 열댓 명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그중에는 조선인도 몇 명 끼어있었다. 함께 도둑질을 하며 먹고 사는 건달일 것이었다. 움막 뒤쪽 토굴에는 처녀 둘이 몸을 떨고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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