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강국의 부끄러운 실상
문종민(수필가·전 광주체육고 교장)
 

국가대표 선수가 라커룸에서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보도에 국민들은 귀를 의심했다. 라커룸은 경기나 훈련이 끝난 뒤 그 결과에 대해 반성하고 승패요인을 분석하는 곳이자 서로 간 격려와 배려, 신뢰, 경기 매너 등의 스포츠맨십이 완성되는 곳이다. 그런 장소에서 성폭행을 저질렀다니 그 무도함에 놀랍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필자는 1995년 ‘스포츠행위의 윤리학적 고찰’이란 학위논문에서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의 예견과 함께, “숨기기 원하는 내용들을 드러내놓고 진단하고 연구하며 고심하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체육계 치부를 드러내는 배반행위라고 협박을 당하면서도 이 논문을 썼던 이유는 스포츠의 윤리적 문제나 가치에 심대한 위험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25년이 지난 지금 예상했던 대로 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는 비도덕적 행위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수많은 전조가 있었음에도 관계기관이 예방의 노력과 대책을 세우지 못한 탓이다.

한 나라의 스포츠 수준은 경기력과 선수 가치관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의 경기력은 경제성장 만큼이나 ‘압축성장’을 했다. 압축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국위선양이라는 목적 아래 모든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인권 사각지대에서 희생을 감내해야만 했으며, 과도한 연습량, 학업과 부모 보살핌을 포기한 합숙소 생활 등으로 가능했다.

경기력과 달리 선수와 지도자의 가치관은 ‘압축성숙’할 수 없었다. 성숙감을 기를 수 있는 스포츠윤리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었고, 승리지상주의로 인해 훈련 과정과 그 내용은 문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체육특기자 제도나 올림픽 메달의 특혜 앞에 건전한 가치관은 무용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엘리트스포츠의 후진성은 경기력의 압축성장과 특혜, 가치관 미성숙의 폐해로부터 기인했다.

스포츠윤리실태를 가늠하기 위한 설문조사 8개 항목 가운데 ‘폭력’과 ‘가치관’에 관련된 내용만 살펴보고자 한다.

‘폭력’과 관련 ‘어떤 형태로든 폭력을 경험한 선수들’이 86.6%이었으며 폭력 행사의 주된 이유를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때문에 지도자들은 폭력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선수나 부모들도 그 이유 앞에 암묵적으로 동의해야 했기에 폭력에 속절없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치관’에 대해서는 67.1%가 ‘건전하지 못하다’고 답했는데 ‘무조건 승리 추구’와 ‘고액스카우트‘가 주된 이유였으며 건전한 가치관 형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승자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혜택 앞에 비윤리적 행위는 더 깊어졌고 자정능력은 마비됐다. 그랬기에 병역혜택 대가로 부여된 봉사활동 실적을 허위로 작성하는 등 특혜를 통한 부와 지위의 신장에도 무릅쓰고 도덕불감증은 극에 달하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친화적 스포츠인권과 스포츠행위자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 및 자정능력 회복을 위해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선수, 지도자, 부모를 대상으로 스포츠윤리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스스로 정오를 판단할 수 있고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으며, 선수인권 감수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행위자 스스로 윤리개념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은 스포츠 윤리교육에서부터 출발한다. 둘째, 비윤리적 행위를 하는 지도자 및 선수를 엄벌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제도적 근거를 마련함과 동시에 국민체육진흥법 등에 존재하는 악법 요소를 개정해야 한다.

셋째, 학생 및 국가대표 선수의 피해에 대한 책임과 배상을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한다. 이미 예견된 일탈을 방지 못하고 계속 유사한 사건들이 일어났음에도 형식적으로 가해자만 처벌했지 관련부처에서 책임진 적이 없었기에 일소할 수 없었다. 또한 정기적으로 전수조사를 통하여 실태파악을 해야 한다. 넷째, 엘리트체육의 순기능을 인정해야 한다.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경계하고 그 육성방안에 대한 천착으로 엘리트체육의 위축을 막아야 한다. 다섯째, 운동선수 학습권을 철저히 보장하여 운동만 잘하는 선수가 아닌 공부도 잘할 수 있는 선수를 육성해야 한다.

스포츠인권은 운동선수 삶의 문제이고 그 유린은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이다. 스포츠인권 인지능력에 불감한 우리나라는 스포츠강국일지 모르나 스포츠선진국은 아니다. 정부·관계기관에서 여기에 대한 대책을 내 놓겠다 한다. 과연 마구잡이식이 아닌 얼마나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고 실천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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