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4장 환도(還都)<286>

귀가 얇은 선조는 음해와 모략인 줄도 모르고 곽재우의 공로를 각박하게 깎아내렸다. 다른 장수들도 헐겁게 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곽재우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그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어떤 날 곽재우는 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내외 정세를 살펴보니 왜와 화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수군만 중시하고 육군을 등한시하는 군사정책 전반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선조실록 1600년 2월20일). 이런 외곬수 성격과 대드는 품이 심히 못마땅하여 왕은 언젠가는 그를 확실하게 밟아버릴 작정이었다.

“우리나라의 장수와 군사가 왜적을 막은 것은 양(羊)을 몰아 호랑이와 싸운 것과 같다. 이순신과 원균이 수전(水戰)에서 세운 공로가 괜찮고, 권율의 행주 전투와 권응수의 영천 수복이 조금 기대에 부응했으며, 그 나머지는 듣지 못했다. 그 중에 잘했다는 사람도 한 성을 지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선조실록 1603.2.12).”

후에 내린 선조의 장수들에 대한 평가가 이러하니, 의령 땅에서 까작까작 왜군 발밑을 갉우는 곽재우 따위는 눈에 보이지밟히지 않았으며, 그래서 훗날 선무공신에 이름 한자 올리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왜 이렇게 지방관들이 음해하고 모략하는 일이 생기는가.”

좌찬성 정탁이 딱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지방 수령들이 의병들이 공을 세우면 투기하는 것이지요. 자기는 무서워서 나서지 못하는데, 대신 그들이 전과를 올리면 체면이 말이 아니 되고, 또 그들에게 공이 돌아가는 꼴을 볼 수가 없는 것입지요. 어떤 자는 의병의 공을 가로채는데, 그것이 들통날까봐 진짜로 공을 세운 자를 말도 안되는 모략으로 밟아버린다는 것입니다.”

정탐병이 나섰다.

“소인이 지방의 이곳저곳을 살피고 돌아온 바, 전라도 군사들은 그런 일이 전연 없었습니다.”

“그곳이 그렇지 않다니, 왜 그렇다는 것이냐.”

“이유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철석 같은 단결력으로 진영마다 훈련을 강행하고 있었나이다. 고을의 산자락마다 훈련장이 설치돼 있었나이다.”

“이끄는 자가 누구더냐?”

“지방 의병장들이지요. 그들 중 일부는 관병으로 보내고, 그러면 권율 장군이 휘하에 두고, 바닷가에서는 이순신 좌수사가 어촌의 장정을 모아 칼을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나이다. 어촌 장정들은 칼이 서툴 뿐, 아기때부터 바다에서 살았으니 물을 다룰 줄 알지요. 그중에는 군선을 만드는 기술자들도 있었습니다.”

“군선을 만드는 기술자들?”

“그렇사옵니다. 나주의 나대용 유군장(遊軍將)이 그 종제 나치용과 함께 군선 제조를 이끌었습니다. 귀선(龜船)을 완성해 실전 배치한 당사자들이옵니다.”

“성능이 신통치 않다는 말을 들었는데 보니 사실이 어떠하던가?”

“훈련중인 귀선의 입주둥이에서 불을 뿜을 때는 오장육보가 시원했습니다. 거북선은 한쪽에 8문의 대포와 40수 명의 노군이 있고, 쉰 명의 수군이 승선하는 전선입니다. 나대용 장군이 기존의 설계도를 변경해 규모를 더 크게 제조한 귀선인데, 왜 수군들을 수장시키고도 남을 위용이었습니다. 실전에 배치된 것은 작년 사천해전 때부터입니다. 옥포, 합포, 적진포 해전 때는 미처 건조하지 못해서 판옥선 등 군선을 가지고 싸웠지만 사천해전에서부터 이순신 수사가 직접 귀선을 이끌고 나가서 왜선 12척을 격파하고, 사흘 후 당포해전에서는 20척을 박살을 내버렸습니다. 쓰임새가 용맹하고 담대하니 이 수사가 귀선을 더 제조하라고 독려하여서 나대용 장군이 화급을 대기 위해 기존의 배를 개량해 제작해서 추가로 제공했다고 하옵니다. 지금쯤은 다섯 척 내지 여섯 척이 해상을 누비고 있을 것이옵니다.”

“듣기만 하여도 옹골차다. 성능이 그렇게 좋은가?”

“선체가 거북등같이 견고하고 180도 자유자재로 회전하니 방호력과 기동력과 공격력이 뛰어납니다. 왜 수군의 조총 사격에도 거뜬히 견딜 수 있도록 판자의 두께가 두치 반이나 됩니다. 돌격하여 충돌하는 전법과 함포 전법을 쓰면 왜선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집니다.”

“가상한 일이다. 장성 변이중의 화차가 행주성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김제 정평구가 제조한 비거(飛車)는 진주성 1차전에 투입되어 승리를 이끌었으니 참으로 장한 재주들이다.”

“해전은 지형과 조수를 이용한 전략이 중요합니다. 전라도 수군은 자기 고장 물때를 잘 알고, 대신 왜군은 모르는지라 왜군이 깨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이순신의 용병술과 여수 흥양 완도 장흥 앞바다의 크고 작은 무인도에서 아름드리 큰 나무들을 찍어 와서 선재(船材)로 사용하니 부족한 배를 벌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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