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사설-전두환, 한마디 사죄 대신 “왜 이래”

국민 앞에 사죄는 없었다. 23년만에 다시 법정에 선 전두환(88) 전 대통령은 전혀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전씨는 5·18민주화운동 영령과 유족, 국민 앞에 속죄할 마지막 기회마저 뿌리쳤다. 5·18 희생자 명예를 훼손한(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씨는 11일 재판을 받았다. 이날 오후 2시 30분 광주지법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은 76분만에 종료됐다. 전씨는 지난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로 기소됐다.

23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선 전씨 측은 “과거 국가 기관 기록과 검찰 조사를 토대로 회고록을 쓴 것이며, 헬기 사격설의 진실이 아직 확인된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국가기록원 자료와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결과, 관련 수사 및 공판 기록, 참고인 진술 등을 조사해 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 전씨 회고록이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이날 “전두환씨는 권력을 찬탈하고 군인을 앞세워 자신이 반대하는 시민을 학살한 반란수괴”라고 밝혔다. 39년전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쳤던 광주시민들도 이날 광주지법 주변에서 “전두환 사죄하라”, “감옥이나 가라”, “구속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과격한 행동이나 물리적인 행동은 없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하지만 전씨의 법정 출두 모습은 달랐다. 석고대죄(席藁待罪)해도 모자랄 판에 무에 그리 당당한지 고개가 뻣뻣했다. 오히려 “발포 명령 부인하십니까”라는 취재진의 질문에서 “이거 왜 이래”라고 짜증을 냈다. “잘못했다”는 한마디를 듣고 싶었던 광주시민과 국민들의 바람이 무참히 무너졌다. 전씨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국민적 정서를 더욱 더 굳혀준 것 같아 안타깝다.

이날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서면 논평에서 “전두환씨는 1980년 5월의 반인권적 범죄 행위에 대해 이제라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은 논평에서 “전씨가 광주의 수많은 시민을 무참히 학살했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사실”, 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전두환의 반인륜 범죄에 대해 낱낱이 진상을 밝히고 철저히 죄를 물어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분위기로는 정치권의 이런 요구를 전씨 측이 받아들일지 미지수여서 답답할 뿐이다.

광주시민과 국민들은 오는 4월 8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인 다음 공판에서 전씨에게 한마디 사죄라도 듣고 싶어한다. 그러지 않으면 용서도 화해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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