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전체주의
박상훈(사단법인 정치발전소 학교장)

전체주의는 민주주의의 한 결과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 전체주의는 민주주의 이전의 독재와는 다른 유형의 비민주 체제다. 민중을 정치에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적극적으로 동원해 체제를 운영한다는 점에서 전체주의는 전통적인 권위주의 체제와 다르다. 둘째,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세력에 의해서만 위협받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자처하는 세력에 의해서도 무너질 수 있다. 누구든 스스로를 비민주주의자나 반민주주의로 자처해 성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늘 대중의 불만을 만들어내고 또 그런 불만을 민주적으로 활용하는 세력을 만든다. 히틀러가 선거로 집권하고,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극우정당이 집권 문턱까지 다가오고, 트럼프 집권이 현실이 된 것은, 이들 나라가 민주 국가이기 때문이지 민주주의에 대한 반대가 커져서 발생한 일이 아니다. 정치학자들이 ‘전체주의란 민주주의에 상존하는 위협이자 병리 현상’이라고 경계하는 것은 결코 비현실적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법론에서의 잘못이랄까 혹은 오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여론조사다.

여론조사란 “주어진 ‘상황’에서, 주어진 ‘질문’에, 주어진 ‘대답 목록’ 가운데 선택한 것”을 뜻한다. 상황이 바뀌고, 질문이 바뀌고, 선택할 수 있는 대답의 목록이 바뀌면 결과는 달라진다. 따라서 여론조사의 정보 가치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질적인 빈곤’인데, 그런데도 여론조사가 발휘하는 권력 효과는 거의 절대적이 되었다. 이 문제에서 한국보다 심한 사례는 없어 보인다. 정당의 지도부 선출과 공직 후보 공천에 여론조사를 적용하기 시작한 것도 꽤 됐다. 학계의 비판도 많았고,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돌이키기 어려운, ‘한국 정치의 독특함’으로 자리를 잡았다. 경쟁하듯 앞 다퉈서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보도하는 언론들 역시 ‘여론조사가 지배하는 한국 정치’에 일조했다. 누가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지, 향후 어느 집단에게 권력을 가져다줄 지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는 이런 기사들이 정치 공론장을 더욱 다양한 관점과 풍부한 내용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여론조사가 늘 앞세워진다는 것, 이보다 정치권력의 미래를 자신들이 결정하고 싶어 하는 언론의 무의식 세계를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정치가 누가 더 많이 지지받는지를 둘러싼 수치 싸움이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수치가 높고 낮은 것이 공적 논란을 평정하는 기능을 하고, 누군가의 시민권을 공공 영역에서 배제하는 힘을 갖기도 한다. 높은 여론조사가 정치적 승리를 상징한다면, 낮은 여론조사는 정치적 사망 선고처럼 기능한다. 그렇기에 모두가 여론을 동원하고 여론에 매달리는 한편, 적대적인 경쟁자 집단에는 낮은 수치의 저주가 부여되기를 열망하는 심리를 갖게 되었다. ‘여론조사가 지배하는 정치’는 사실상 ‘여론동원에 매달리는 정치’와 다를 바 없다. 그것은 여론의 조사이기보다 여론의 조작에 가까운 현실로 이어진다. 최근 스마트폰의 스팸번호차단 어플에서 여론조사 전화번호까지 걸러주기 시작한 것은 웃기 어려운 우리 정치의 자화상 같다. 여론조사는 오늘날 한국의 정치인들과 언론이 신봉하는 유사 신앙처럼 되었고, 그에 따라 정치는 더욱 더 사나운 권력 정치로 퇴락했다.

혈통과 가문, 그리고 계급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는 군주정이나 귀족정과는 달리,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권의 원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체제에서 기대할 수 없는 장점과 매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일찍이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미국 민주주의를 고찰하면서 강조했듯이, 다른 어떤 정치체제보다도 민주주의에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고자 하는 열정’이 말할 수 없이 커진다. 다수 대중의 지지를 얻고 또 동원해 권력 자원을 획득하고자 하는 야심을 막을 길은 없다. 민주주의는 ‘다수 지배’ 체제이지만 다수가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서는 매우 다른 정치적 결과를 만든다. ‘서로 다른 이익과 열정을 갖는 시민 집단들의 자율적인 연합체’일 때 다수는 민주주의의 정당한 기반이 된다. 그렇지 않고 ‘여론조사 수치로 나타나는 무정형적인 무리’가 다수가 되면 민주주의도 얼마든지 ‘다수의 전제정’으로 전락한다. 사회를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분열시키는 여론 동원의 도구가 된다. 여론조사는 꼭 필요할 때 절제해서 쓸 때만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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