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폄훼 히드라’를 잠재우려면

광주법정에 섰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무런 사과 없이 광주를 떠났다. 11일 전 전 대통령은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형사재판 출석을 마치고 서울로 떠났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는 등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 전 대통령이 광주에서 한 말은 “왜 이래”라고 내뱉은 것이 전부다. 광주법원에 들어서는 그에게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자 격앙된 어조로 “왜 이래”라고 말했다. 그가 광주에서 5·18영령과 유족들에 대한 사과를 할 가능성은 사실 없었다. 그래도 광주시민들은 실낱같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고령이 되면 양심에 따른 회한이 깊어지기 때문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어떤 형태로든 ‘광주학살’에 대해 참회하고 국민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와 민족 앞에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의 반성어린 증언과 참회는 진영(陣營)·계층 간에 벌어지고 있는 ‘5·18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민통합의 전기가 되는 것이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전두환 등 신군부가 정권찬탈을 위해 광주·전남주민들을 무차별 무력으로 강제 진압한 사건이다. 역사적으로 명백한 사실이다. 사법적 판단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신군부 인사와 5공 추종세력들은 이를 부인해왔다. 각종 청문회와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어떤 결과가 제시돼도 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만원씨나 극우보수인사들이 벌이고 있는 ‘5·18폄훼나 왜곡’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전기는 전두환씨의 진정어린 사과다. 그래야 국민을 분열과 대립으로 몰아가는 ‘5·18’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 전 전 대통령과 남편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추켜세우는 아내 이순자씨는 ‘5·18폄훼’의 중심이자 핵심이다. 그들의 태도변화가 우선돼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히드라는 머리가 9개 달린 괴물이다. 헤라클레스가 머리를 잘라도 히드라가 죽지 않은 것은 가운데 머리는 잘라져도 또 머리가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전 씨 부부가 광주로 출발한 날, 극우보수 세력들이 몰려와 응원하는 모습은 참으로 경악스러웠다. 전 씨의 참회는 ‘5·18폄훼 히드라’를 잠재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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