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4장 환도(還都)<293>

일곱날을 밤낮없이 말을 달리니 압록강 변경에 이르렀다. 정충신은 말 잘 달리는 장졸 넷을 이끌고 변경까지 왔다. 새벽녘의 강심은 짙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강을 건너기에는 좋은 여건이었다. 적선의 진군처럼 소리없이 강을 건널 수 있다. 그는 강가에 매어져 있는 낡은 배에 올랐다.

“노가 두 개 뿐이니 번갈아서 젓기 바란다.”

“도대체 어디를 가시려구요.”

조장격인 허풍달이 물었다.

“나도 모른다. 따르거라.”

정충신은 행선지를 말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미지의 땅을 간다. 변방을 지키는 수병과 육병 몰래 가는 길이니 누구에게 어디로 간다고 말할 수도 없었을 뿐아니라 설사 안다고 해도 알려줄 수 없었다. 행여나 붙잡히는 날이면 행선지가 들통나기 때문에 이를 비밀에 붙여야 하고, 굳이 말한다면 행동 직전에 말해야 한다.

강을 건너자 건주여진의 조그만 부대가 나타났다. 건주여진은 세력이 확장돼 산해관, 영원성까지 진출하고 있었다. 압록강에서 고구려 발해의 고토를 장악하고 있는데. 족장 누르하치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명의 용호장군이었다. 랴우둥(요동) 도독 이성량이 누르하치에게 용호장군으로 임명하고, 여타 여진족을 제압하도록 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오랑캐가 오랑캐를 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을 구사한 것이었다.

정충신이 강을 건너 강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초병에게 다가갔다.

“초장(哨將)을 찾아왔다. 안내하라.”

“누구냐?”

“강건너 조선에서 건너왔다.”

“무슨 일이냐.”

“초장에게 말하겠다. 긴요한 일이다.”

정충신이 앞가슴을 척 들이밀고 당당하게 말하자 초병이 금세 쫄더니 알았다며, 따르도록 눈짓을 하고 앞서 막영지로 올라갔다. 그가 깃발이 나부끼는 막영으로 정충신 일행을 안내하더니 문 입구에서 소리쳤다.

“초장, 조선땅에서 웬 장졸들이 왔소!”

“들여보내.”

정충신 일행이 막영 안으로 들어섰다. 바람에 천막이 들썩거렸다.

“무슨 일이냐.”

초소장이 물었다.

“밀서를 가지고 왔다. 용호장군을 만나고자 한다.”

“용호장군?”

초소장이 갑자기 긴장한 모습이 되었다.

“조선 왕의 밀지를 가지고 왔다. 명나라보다 여진족과의 친선이 우리의 목적이다.”

“늬들은 간자(間者)들이다. 이놈들 당장 포박하라.”

초소장이 버럭 소리치자 한쪽에 웅크리고 있던 병사들이 일어나 달려들었다.

“진정하라. 누르하치 용호장군은 조선의 후예다. 랴유둥 도독 이성량 장군 역시 조선의 후예고, 이 도독의 아들 이여송 총대장이 명군을 이끌고 조선에 출병하지 않았느냐. 이런 내용도 모르고 나를 포박하려 하느냐?”

그제서야 초장이 긴장한 모습으로 응대했다.

“결례했다. 갑자기 들이닥쳤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방어벽을 친 것이다. 나 역시 누르하치 장군의 가계도와 이성량 도독의 가계도를 들어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조선인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다. 하지만 너희들은 우리를 덜 떨어진 오랑캐로 업신여기고 있다. 이성량 도독이나 누르하치 장군은 조선에 매우 우호적인데, 너희는 명만 따르고 있다.”

“누르하치 장군 역시 명의 장군 아닌가?”

“헛소리 말라. 이성량 도독이 누르하치를 이용하고, 누루하치 장군 역시 이성량을 이용할 뿐이다.”

초소장은 엉뚱한 얘기를 했다.

“당신은 누구냐? 함부로 말하는 것 보니 보통 초장은 아닌 것 같군.“

그가 대답 대신 누루하치 장군을 만나려거든 산해관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가는 도중에 팔기군에게 잡힐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기다려라. 이삼일 후 여기로 오실 것이다.”

“장군의 동태, 군사기밀을 함부로 말하는 것 보니 초소장이 보통 신분이 아닌 것 같은데, 당신의 정체가 뭐냐.”

“누르하치 장수의 셋째 아들 용타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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