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봉 전남 여수시장의 남도일보 자치단체장 칼럼
박물관은 도시의 문화수준 가늠 척도
여수는 3년 연속 관광객 1천300만 명 이상이 찾는 대표 해양관광 휴양도시로 전국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2019년 국내 경제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다소 우울한 전망 속에서도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석유화학산업의 호황은 대규모 투자로 이어지고 있어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지역이 다른 지자체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경제나 관광 문제에만 신경을 쓰느라 간과했던 것이 우리의 정신을 후세에 어떻게 물려주는가 하는 부분이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공유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미래세대와 방문객들에게 전하는 일은 관광을 활성화하고 산업경제를 부흥시키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의 출발점은 도시의 문화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며, 이는 박물관에서 찾을 수 있다.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면 박물관으로 가보라고 한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박물관에 담겨 있는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통해 과거를 되짚어 보고,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통찰하는 원천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전남 제1의 도시이자, 인구 30만 도시 여수에 역사·문화 박물관 하나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제는 박물관다운 박물관을 건립해 도시의 역사와 문화, 정신을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알게 하고, 배우고 깨닫는 여행·관광을 위한 관광시설로도 활용해야 할 것이다.
현행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상의 ‘박물관’은 문화·예술·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 향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역사·고고·인류·민속·예술·동물·식물·광물·과학·기술·산업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하는 시설로 정의하고 있다.
고고학적 유물, 인류문명의 유산과 예술품, 그 밖의 학술 자료를 보여주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당 시대의 역사·문화적 행태와 그 물질적 자취를 통해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고, 수많은 영감과 창의성을 제공하는 것 역시 박물관의 몫이다.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박물관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의 왕실 박물관이 오늘날 고전적 기능을 갖춘 박물관의 시초라고 한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은 여행객들이 가장 먼저 들르고 꼭 가봐야 하는 필수코스다.
지난 2003년부터 시립박물관 건립 사업을 추진해왔던 여수시, 하지만 지방비 미확보, 위치의 부적합성, 타당성 평가에서의 부적정 등의 이유로 4차례의 시도 동안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민선7기 중점시책 중 하나인 여수시립박물관 건립사업은 이제 시민적 공감대 형성으로 그 어느 때보다 탄력을 받아 추진되고 있다. 2018년 10월부터 박물관 건립을 위한 시민의견조사와 기본계획수립 용역이 시작돼, 11월 시민공청회에서는 추진방법과 적절한 건립부지 의견까지 개진됐다. 이어 지난 1월 말 박물관 부지를 웅천동 이순신공원으로 선정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 연면적 6천300㎡, 사업비 280억 원 규모의 박물관 설립타당성 사전평가를 신청했다. 문체부는 2월 서면심사와 3월 현지실사를 거쳐 4월 최종 심사를 하고 5월 중 적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의 뜻을 모아 범시민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기관의 방문 활동을 해 나갈 예정이다.
이와 함께 우리 시민 모두가 무엇보다 관심을 기울여 할 점은 여수에서 출토·발견된 유물을 다시 우리 품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근 광주, 순천, 전남대 등의 박물관에 보관중인 소중한 우리지역 문화재는 7천여 점에 이르고 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만큼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하고 시작해야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수에 박물관이 없는 것은 명분이 부족하거나, 예산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시민사회의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선 여수시립박물관 건립사업은 반드시 여수시민들의 의지와 단합된 힘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지역문화 발전과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박물관의 건립은 경제적 측면의 당위성 부족을 잠재우는 충분한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고 국제문화관광도시 여수의 퍼즐을 완성할 키워드가 될 것이다. 시민들이 원하는 박물관의 모습을 완성하기 위해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