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10)불재-염암고개(2018. 11. 17)
경각산 조망바위 올라서니 모악산이 안개뚫고 반겨
한오봉과 옥녀봉도 효간치 너머 손에 잡힐듯 다가와
청명한 하늘빛 반사 구이저수지 물색 한 폭의 산수화
탁 트인 활공장선 외국 젊은이들 패러글라이딩 즐겨
나라의 위급한 상황 알렸던 봉수대 지금은 흔적 없어

경각산 조망바위에 올라서면 확트인 시야감과 함께 모악산이 불쑥 나타나 반긴다. 산 아래쪽 저수지는 구이저수지로 청명한 하늘빛을 반사한 푸른 물결은 한 폭의 산수화를 동영상으로 보는 듯 하다.
경각산 활공장에 선 필자. 이곳은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 즐겨찾는 장소다.
경각산 정상 모습.
경각산 정상에서 바라본 모악산.
옥녀봉 능선
‘준·희’ 이름을 지난 한 등산객이 걸어놓은 안내표지판.
트랭글에 기록된 호남정맥 등반길.

2주 전 한오봉에서 길을 잘못 들어 완주군 상관면 편백숲 펜션단지 쪽으로 하산했기 때문에 경각산을 오르지 못했었다. 오늘은 불재에 차를 대고 경각산을 오른 후 다시 내려와서 염암고개 쪽으로 가기로 했다.

9시 20분쯤 불재에 도착했는데 ‘불재 참숯 불가마’란 이름으로 큰 숯공장이 정맥길 상에 가동되고 있다. 불재에서 경각산으로 오르는 길은 임도가 잘 되어 있는데 일부러 임도를 피해 능선 길로 올라 경각산을 올랐다. 위 구간은 잠정폐쇄된 구간이라 그런지 발자국도 희미하고 리본도 찾아보기 힘들다.

30여분을 걸어서 조망포인트인 조망바위에 도착했다. 안개 속에서 맞은편에 갑자기 커다란 산이 떠오르는데 구이저수지 너머에 있는 모악산(798.5m)이다. 바로 김일성 시조묘로 유명한 산이다. 김일성 시조묘는 특이하게 정맥처럼 우뚝한 능선 상에 조성되어 있는데, 3대에 걸쳐 임금이 난다는 전설이 있다. 다만 모악산은 호남정맥 상에는 있지 아니하고 모악지맥에 위치하는데 중간에 산맥이 전주 쪽으로 가다 끊긴다. 조망지점에서 경각산 정상까지는 30여분이 더 걸려서 10시 20분경 도착하였다. 경각산 정상 못미처 안부에는 산불감시초소가 하나 있고, 경각산 정상에는 통신안테나가 있어서 펑퍼짐한 뜰이 경각산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경각산은 높이(659m)에 비해 근처의 산을 아우르는 장엄함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500여미터를 570봉 쪽으로 내려가 보았는데 경사가 급하고 발밑에는 심한 낭떠러지라서 매우 위험한 곳이다. 지난번 올랐던 한오봉과 옥녀봉이 효간치 너머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다음에 기회를 봐서 쑥재에서 다시 효간치를 넘어 경각산 구간을 땜방하기로 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 다시 경각산을 올랐다. 다시 정상에 오니 10시 56분경이 되었고, 철책으로 둘러싸인 전일상호신용금고에서 만든 이정표에는 ‘쑥재 5㎞, 불재 1.8㎞, 정각사 1.1㎞’라고 쓰여 있다. 경각산 정상에서 오른쪽 암릉을 타면 정각사 쪽으로 내려가는데 매우 험한 길이다.

트랭글 상에는 불재에서 경각산 정상까지가 2㎞가 조금 넘는데, 아마 내가 폐쇄된 능선 길을 죽 탔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경각산을 내려가다 보니 꽤나 경사가 심한 길을 올라왔다는 생각이 든다. 군데군데 낙엽이 바위를 덮고 있어서 여간 미끄럽지 않다. 스틱을 사용하여 조심조심 내려왔더니 11시 35분이 되었다.

정맥길은 불재 참숯공장에 가로막혀 위 공장의 진입로로 쓰이는 임도를 통해 죽 올라갔다. 오른쪽으로 10분쯤 오르니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나타났다. 구이저수지와 모악산을 바라보며 툭 트인 활공장에는 20여명의 외국인 젊은이들이 활공을 준비하고 있다. 5분여를 거꾸로 정맥 길을 더듬어 가 보았으나 참숯 불가마 공장에 막혀서 경각산에서 직접 오르는 길은 희미하다. 다시 활공장으로 돌아와 한 젊은이에게 “Can I take a picture please?”라고 했더니 흔쾌히 사진을 찍어 준다.

옆에 있던 우리나라 청년이 어디에 가시는 길이냐고 물어서 호남정맥을 종주하는 길이라고 설명을 했다. 옆에 있던 패러글라이딩 하러 온 외국인들은 군산비행장에 근무하는 미군들이란다. 위 사람들이 처음에 한국으로 배치를 받으면 전쟁위험지역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여 겁을 먹는데, 일주일쯤 지나면 너무나 안전한 곳이란 사실을 알고 매일 술 마시고 논단다. 다 사병들 같은데 주말에 단체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걸 보니 부럽기도 하다.

정맥 길은 패러글라이딩장에서 임도를 타고 올라오면 오른쪽에 있는 숲길로 이어진다. 12시 20분쯤 낙엽에 발이 푹푹 빠지는 무명봉우리(416봉)에 터를 잡고 점심을 먹었다. 날씨도 맑아지고 조금씩 기온이 올라서 몸이 따뜻해진다. 경각산에 오를 때는 패딩을 벗으면 춥고 입으면 더워서 꽤 힘들었었다.

오늘 산행은 줄곧 모악산을 보면서 걷는 산행이다. 구이저수지도 꽤나 커서 한참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청명한 하늘빛을 반사하는 구이저수지의 파란 물색이 한 폭의 산수화를 동영상으로 보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다시 힘을 내어 낙엽이 잔뜩 덮힌 정맥 길을 오르다보니 딱 오후 1시가 되어 트랭글이 울린다. 바로 430m인 봉수대 봉이다.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는데 예전에 봉수대가 있었던 봉우리인 모양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도 나오지만 봉수대는 외적 침입 등 나라의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제일 빠른 통신수단이었다. 지금은 봉우리에 봉수대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에서 눈앞에 꽤나 높은 봉우리가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이 들어오는데 오늘 산행에서 경각산 다음으로 높은 치마산이다. 위 봉우리는 넓은 치마처럼 산봉우리가 길게 늘어져 있어서 치마를 연상케 한다. 근처의 봉우리보다는 170여미터가 높아서 거의 1시간 만에 치마산 정상에 닿았다. 표지석에는 ‘607m 치마산(도솔산)’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트랭글을 켜보니 고도가 609m로 나온다.

치마산에 ‘작은 불재 3.7㎞’란 이정표가 보인다. 위 표지는 잘못된 것이고 염암고개까지가 3.7㎞다. 작은 불재는 치마산 아래에 있는 작은 고개 길이다. 40분 정도를 하산하니 고개가 나타나고 그곳에 ‘준·희’가 “여기가 작은 불재입니다”라고 안내표지를 달아 놓았다. ‘준·희’는 알려지지 않은 산행 고수임이 틀림없다.

작은 불재를 지나 다시 450봉, 430봉, 450봉이 계속되는데 마지막 450봉에서는 유격훈련을 연상케 하는 로프구간이 나온다. 몸무게가 그동안 3㎏가 불어서 그런지 무릎이 시리고 힘이 없어서 암릉구간을 내려오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430봉을 3시 20분에 넘고 4시가 되어서야 염암고개에 도착했다.

이곳 근처에는 개인택시가 없어서 결국 완주군 상관택시를 불렀더니 요금이 4만9천500원이나 나온다. 친절하신 기사님이 5천원을 깎아줘서 4만5천원만 지불하고 막 하차하는데 왠 산꾼이 지친 기색으로 다가온다.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더니 서울에서 밤차로 내려와 모래재에서 새벽 3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내가 두 구간 반에 한 것을 하루만에 주파한 셈이니 꽤나 산을 잘 타는 사람이다. 위 산꾼을 승용차에 태워서 전주대학교 근처까지 데려다 주고 광주로 돌아왔다. 위 산꾼 입장에서는 막 하산을 마친 곳에 1∼2초간의 간격을 두고 내가 택시에서 내렸으니 택시비 몇 만원을 아낀 셈이다. /글·사진=강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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