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을 키우는 사회
최유정(동화작가)

요사이 모든 뉴스 간판엔 ‘버닝썬’ 사건이나 ‘정준영’사건이 속보로 뜬다. 누가 구속되었고 누가 무슨 짓을 했는지 추가 정황 등이 실시간으로 보도된다. 이 사건이 어디까지 가지를 치고 확대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번지는 글자를 읽어내려고 미간까지 찌푸려가며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고개 숙여 사죄하는 정준영의 모습을 확인하고 모 방송국에 보내졌다는 승리 문자메시지를 읽고 또 읽는다. 고개 숙인 정준영의 모습엔 화가 나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승리의 글을 읽으면서는 허탈감마저 든다.

며칠 전 취재차 한 분을 만났다. 미혼모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연스레 자녀 관련 이야기가 나왔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자기도 모르게 결혼하지 말기를 종용하고 있다는 그 분이 말씀에 기분이 씁쓸했다. 긴 이야기 끝에 자신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그분이 덧붙였다. 나는 문제를 바라보는 맥락이 잘못 되었다는 지적, 딸의 선택권을 존중하지 않는 엄마의 조언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을 감히 할 수 없었다. 그 분의 심정에 공감이 갔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분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여자로서,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그분의 고민에 너무도 공감이 됐다.

불안함과 불쾌감을 동시에 표출하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또한 불안함과 불쾌함을 동시에 느꼈는데 섞이기 힘든 이 양가적 감정은 대한민국을 견뎌내고 있는 모든 여성들 또한 동시에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어디 여성뿐이겠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이것을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대한민국 남성들의 양가적 감정! 이것은 사방도처에 깔려있는 ‘몰카’가 내 딸과 아내를 찍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과 동시에 은근히 이 몰카를 즐기고 향유하는 감정인 것이다. ‘성폭행’을 당한 동료 여성을 바라보며 분노하지만 내게 일어난 일은 아니지 않는가, 하며 안도하는 감정인 것이다.

짝사랑에 고민하는 친구를 위해 돼지 흥분제를 구해주려 했다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책이 버젓이 팔리는 사회! 그 책에 대한 “그 때는 그랬어!”라는 일갈과 변명에 공감을 표하는 사회! 그런 사회 분위기가 불안함과 불쾌감을 양산하고 증폭시켜 온 것이다. 현재의 ‘버닝썬 및 정준영 사건’은 한 순간, 특정인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가 아니라 이러한 불안감과 불쾌함을 무던히 견뎌내도록 종용한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사건이다. 그래서 정준영과 승리를 바라보는 시선에 분노와 안타까움이 동시에 존재한다.

정준영과 승리가 괴물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괴물을 키운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차별의식, 구체적으로는 여성을 성적 대상, 도구로 바라보는 잘못된 성의식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맥락과 지점을 통렬히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모든 여성은 잠재적 피해자가 되고 모든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가 되고 만다. 성폭력 피해자의 93.5%가 여성이면서도 그 중 경찰에 직접 신고한 비율은 2.2%에 불과하다는 수치는 결코 극복될 수 없다. 딸에게 독신을 종용할 수밖에 없는 엄마가 공감을 얻는 사회는 절대 극복될 수가 없는 것이다.

‘버닝썬’ ‘정준영’ 사건을 개인의 일탈, 몇 몇 연예인의 일탈 문제로 바라보지 말자. 이 문제는 “여성을 소비,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차별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이다. 너와 나의 문제이며 여성과 남성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내 아들과 딸이 고통 받지 않는 선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간절하고 절실하다면 나의 아들과 딸이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져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는 이 현실 또한 마땅히 극복해내야 한다.

개인의 일탈을 처벌하고 유착관계를 밝혀내는 것에 그치지 말고 ‘선한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문화적 위력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우리 아들, 딸을 교육시켜 나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선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선한 가치’들과 그러한 가치를 중심으로 문화적 위력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하는 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선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선한 가치’가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되고 파급되도록 온 사회가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버닝썬, 승리, 정준영과 같은 괴물을 더 이상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서 내 안에 있는 불편함과 불쾌함이 무엇인지, 그 정도가 얼마인지 들여다 볼 용기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부터 용기를 내야겠다. 오늘, 나의 불안함과 불쾌함을 꼼꼼히 들여다봐야겠다. 나와의 싸움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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