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5장 변경<301>

야인여진(野人女眞)은 여진족의 세 분파 중 하나로 가장 야비한 부족이다. 헤이룽장 유역에 진을 친 해서여진(海西女眞)과 지린성의 건주여진(建洲女眞)보다 만주 북방에서 활약하는데 주로 유목과 농경을 병행했으나 박토가 많은데다 갈대숲이 우거진 습지대가 대부분이어서 농사를 짓기가 어려웠다. 깊은 산이 없으니 값나가는 호랑이 곰 사슴 늑대 따위를 사냥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강가에서 제한된 수렵이나 야산에서 꿀과 버섯을 따거나 나무를 베는 임업을 생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노상 식량이 부족해 궁핍하게 살았다.

결국 도둑질로 먹고 사는데 두만강 변경과 함경도가 노략질의 대상이었다. 이들 때문에 조산보 만호 이순신도 골치를 앓았다.

선조 27년(1587년)의 일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6년전인데 이때도 조선은 남쪽과 북쪽 모두에서 외침이 있었다. 남쪽은 왜구의 침략이고 북쪽은 여진족의 약탈이었다. 이순신은 녹둔도의 둔전관이자 조산보 만호로 복무했다. 녹둔도는 기름진 땅으로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곡물로 산악지대 함경도를 먹여살리고 있었다.

여진족은 가을 수확철이면 당연히 세금 받아가듯 기름진 농토에서 난 수확물들을 군사를 끌고와서 주민을 겁주고 약탈해갔다. 야인여진은 여러 새끼 부족들을 통합해 세를 확장중에 있었으므로 군사가 조선의 녹둔도 주둔군의 다섯 배나 되었다. 천하의 이순신이라도 세가 부족한 데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육전에는 서툴렀다.

이순신은 적정을 살피고 척후 활동을 벌인 결과 군사 300 명만 보충하면 두만강 북변에서 적을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전에 강한 지라 그들을 강가로 유인해 두만강물로 밀어붙이면 완전 수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상관인 경흥부사 이경록과 북병사 이일에게 추가 병력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가타부타 기별이 없었다. 도리없이 그는 함경도 청진 함흥 해안지대로 물을 다룰 줄 아는 수병들을 모병하러 나갔다. 그 사이 여진족의 침탈을 받은 녹둔도는 150명의 사상자를 내고, 100여명이 포로로 끌려갔다.

“죽은 자는 어쩔 수 없고, 끌려간 산 자라도 구합시다.”

뒤늦게 이순신은 이경록과 함께 적의 뒤를 쫓아 적장을 사살하고 60명의 포로를 구출했다. 그러나 식량을 털렸으니 패배한 것은 분명한 패배였다. 북병사 이일은 조정에 장계를 올렸다.

-조산보 만호 이순신은 근무지를 무단 이탈하였으며, 그 결과 녹둔도는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여진족 침입을 격퇴하도록 지엄한 명령을 내렸거늘 상관의 명령을 불복하는 하극상도 자행하였나이다. 이순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상놈에 새끼가 있나?”

선조는 왕의 체신머리도 잊고 장계를 받자마자 성질이 뻗쳐서 일갈했다.

“이순신 그자를 졸병으로 강등하고, 백의종군토록 하라!”

본떼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다른 무장들이 겁먹고 도망갈 생각을 안할 것이며 임지에서 목숨 걸고 싸울 것이다. 이일은 부하를 강하게 몰아붙여버려야 자신의 실수를 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병력 지원 요청을 깔아뭉갠 것을 여하히 숨기는 것은 상관의 거침없는 우격다짐이라야만이 통용되는 것이다. 섣불리 조졌다가는 간보는 것으로 알고 오히려 대든다. 조선 사회는 전후좌우 막론하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법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어명의 송장이 당도하기 전에 지원병을 포함해 2700여 조선군을 이끌고 여진족 부락을 습격하여 조근조근 복수전을 벌여나갔다. 여진족 군사의 근거지를 역습하니 빼앗긴 조곡과 미곡 오백석도 다시 회수해올 수 있었다. 이때 여진족 군사 200이 수장되었다. 이순신이 명예회복을 한 것은 그러나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다<조산보 만호 이순신 장군과 6.25전쟁 3군단장의 차이‘ 일부 인용>

장수의 책임감과 상관의 모략을 보고, 정충신은 침을 칵 뱉었다. 침은 벌써 바닥에서 얼어붙었다.

“웃기는 짬뽕들... 이러니 아직도 녹둔도는 오랑캐의 밥이 되고 있지.”

그로부터 이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만호와 녹둔도는 야인여진의 약탈 근거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든 멈춰야한다. 정충신은 젊은 군관들을 소집했다.

“이번에야말로 손보아버리자.”

“그놈들 숫자가 많으니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요. 차라리 곡식 얼마를 떼어주고 말지요.”

“그 말 한 놈이 누구냐?”

정충신이 눈알을 부라리며 좌중을 훑었다. 그가 모르고 한 말은 아니었다.

“비굴한 생각일랑 하려면 저 두만강물에 코박고 뒈져라. 나의 사전에는 쌀 한톨도 이유없이 뺏길 수 없다. 알간?”

그때 초병이 막사로 급히 뛰어들어왔다.

“만호 장수! 건주여진의 젊은 장수가 찾아 왔나이다!”

“건주여진의 장수?”

“그렇게만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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