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5장 변경<302>

나가보니 누르하치의 차남 다이샨이었다.

“와, 오랜만이다. 여긴 웬 일인가?”

반가움에 정충신이 한달음에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다. 그들은 굳게 포옹했다.

“정 만호가 조산보 만호로 왔다길래 일부러 찾아왔지. 우리 그럭저럭 십년만이지?”

“그렇군. 그래, 잘왔다. 다이샨도 의젓한 장수가 되었군. 어서 자리로 가세.”

정충신은 막영의 깊숙한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따끈한 백두산 산삼차를 내놓자 그는 단번에 두 잔을 마셨다.

“내 다이샨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마음도 없었네. 어찌 기별을 하면 랴오닝성 끝머리에 가있다고 하고, 어느 때는 지린성 창스, 푸순에 가있다고 하고... 좌우지간 예를 취하지 못했어. 보내준 군마로 우리가 군사들 큰 힘을 얻었지. 그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하는데 밤새 천리길을 달려버리니 따라잡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무인의 길이란 한 곳에 멈춰있을 수가 없지. 계속 창을 날리고 말을 달려야 하는 신세 아닌가. 그래서 정벌을 거의 완료했어. 하지만 말이야.”

“무슨 일인가.”

“야인여진을 마저 정벌해야지. 그걸 이루지 못했단 말이야. 야인여진을 아버님께 선물로 바칠 생각이야.”

대륙의 아들이라서 그런지 그의 꿈은 원대했다.

“그런데 야인여진이 만만치 않아. 그 만만치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았지.”

“만만치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고? 무엇인가. 나에게도 말해주면 도움이 되겠네. 우리도 그놈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네.”

“정 만호,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다이샨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정색을 하며 정충신을 바라보았다. 네가 그걸 모르느냐는 투다. 그럴 때는 야인의 다혈질적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내가 그렇게 말해주는데도 모르겠는가?”

“난 도통 모르겠는데...”

“야인여진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녹둔도에서 나온단 말이야. 녹둔도에서 수확한 곡식이 그놈들 배때지를 따뜻하게 채워주지. 그래서 힘이 솟아서 버티는 거야. 그러니 그놈들 병참기지나 다름없는 녹둔도와 두만강 하류를 정 만호가 잘 방어해야 한단 말일세.”

그제서야 정충신이 껄껄껄 웃었다.

“그것 참 잘된 일일세. 나도 그놈들이 고약해서 어떻게 분쇄할까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말이야. 녹둔도에는 둔전관과 감군(監軍) 병사들이 있는데 내가 지원해주고 있지.”

“내가 야인여진 만리길을 헤매었는데 이놈들이 군량 기지를 두만강 하류 평야와 녹둔도에 두고 있더군. 그곳을 지키는 사람은 조선의 조산보 만호나 녹둔도 둔전관 아닌가. 그런데 할 일없이 방치한다는 걸세. 먹고 놀면서 한가하면 수렵을 나가고, 투전이나 하고 말일세. 야인 방어가 허술하고 병사들이 보이지 않으니 누구 좋으라는 것인가. 조선의 최북단이라서 조정의 입김이 미치지 않아서 정신이 해이되고 이완된 탓인가?”

“지적해주어서 고맙네.”

정충신은 묵묵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야인들이 내놓고 조선군을 야유하더군. 쳐들어가도 오는 것도 모른다는 기라. 어차피 대거리하면 죽게 되는데 뭐하러 나가냐는 것일세. 그들이 노리는 건 조선군의 머리가 아니라 곡식인데, 곡식만 약탈하면 떠나가는데, 지 목숨 살자고 곡식을 내주고, 병기도 내주고, 그러면서 제대 일자를 기다려서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거지. 목숨 하나 살리려고 그 모든 것을 내준단 말일세. 이러니 우리가 고약하지 않나. 이걸 방치할 것인가?”

“방법이 있나?”

“있지. 그놈들의 병참기지를 옥죄야지. 그러려면 우리가 합동작전으로 부숴버리면 돼. 야인들 망하는 건 그것밖에 없지 않은가.”

정충신이 무릎을 탁 쳤다.

“협동작전으로 협공을 한다. 그래서 녹둔도에 그자들이 얼쩡거리지 못한다... 옳거니!”

“우리가 쳐부수면 야인여진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거야.”

“잘 왔네. 함께 그놈들 몰아내면 천리 밖은 우리 영토일세.”

그러자 다이샨이 눈을 함하게 뜨고 정충신을 노려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합동작전이지 땅을 내주겠다는 것이 아니야. 대금(후금)제국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우리를 도와야지 과욕을 부리면 우리 우정이 금이 가네. 정 만호는 못된 야인을 몰아내고 조선반도 백성들을 평화롭게 살게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는가.”

“나는 충분하지 않네.”

정충신이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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