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3·1운동 주도한 대한국민노인동맹단
박은식 김치보 강우규 윤여옥 등이 결성
국내외 독립의지 고취에 큰 역할...조선 총독 처단 시도

연해주에서 3·1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만든 대한국민노인동맹단명부./미국 서재필기념재단에서 독립기념관에 기증

-연해주에서 46세이상 노인들이 동맹단 만들어 3.1운동 지원

연해주에서 3·1만세운동은 임시정부 성격의 ‘대한국민의회’와 ‘대한국민노인동맹단’ 같은 한인 단체가 주도했다. 특히 박은식, 김치보, 강우규, 윤여옥 등이 결성한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은 46세 이상의 연령 제한을 두었을 뿐 남녀를 가리지 않고 회원을 모집했다. 노인동맹단은 국내외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는 한편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일본총영사관에 독립요구서를 제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강우규를 국내에 파견해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조선 총독을 처단하고자 했다. 의거는 실패했지만, 국내외 독립 의지를 고취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현존하는 ‘대한국민노인동맹단명부’는 서재필 기념재단에서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서재필박사의 유품 중에 하나이다. 이 명부의 내용은 서재필 박사에게 총재직 수락을 요청하는 글과 노인동맹단 단원 명단으로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박사재필선생각하(徐博士載弼先生 閣下)’로 시작되는 총재직 수락을 요청하는 글의 주요 부분을 보면 ‘우리의 목적을 도달하려면 평일 덕망이 소선(素著)하야 국민의 신앙(信仰)이 귀일(歸一)하고 내외대세에 식감(識鑒)이 탁월하신 이에게 지도를 受치 안이하면 불능할지라. 인하야 중망(衆望)의 추대로 본단 총재의 위(位)를 각하(閣下)께 봉헌(奉獻)하느니…’라 하였다. 첨부된 명부에는 2,005명의 명단이 실려 있고, 서명자들은 이름 바로 밑에 도장, 지장을 찍었거나 친필로 서명하였다.

100년 전 3.1만세운동에 참가한 연해주를 비롯한 북방지역은 1860년대부터 한인들이 이주하여 개척한 기회의 땅이다. 국권상실이후 연해주는 항일의병과 독립운동의 현장이었지만 1937년 스탈린에 의해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시켜 버려 잊혀진 공간이 되었다. 소련의 붕괴이후 중앙아시아에 살던 한인 후손들이 연해주와 경기도 안산, 광주광역시 등으로 귀환하고 있다. 5만명 규모의 연해주 고려인들이 한민족공동체를 형성하며 성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신경제구상과 신북방정책이 잘 진전되어 광주에서 서울에서 기차타고 연해주를 방문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희망한다.
/김재기(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사)재외한인학회 회장)

10대 고려인 학생들의 3·1만세운동 재현-김재기 교수 제공
안산 고려인들의 3·1운동./김재기 교수 제공
연해주 독립운동가 전시./김재기 교수 제공
안산 고려인 학생 만세운동./김재기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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