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5장 변경<305>

대문을 꽝꽝 두드리는 소리에 대갓집 하인이 대문을 열고 나오더니 꾀죄죄한 행색의 젊은이를 보고 버럭 소리질렀다.

“웬 놈의 새끼가 여기서 얼쩡거려?”

꼬락서니로 보아서는 웅장한 솟을대문 앞에서 잔뜩 쫄아서 지나가야 하는데 대문을 꽝꽝 치고 있으니 미친 놈이 아닌가 싶었다. 사대부 집처럼 양옆의 행랑보다 지붕을 높게 올려 세운 솟을대문은 권위의 상징인데 무엄하게도 대문을 꽝꽝 치고, 사람이 나오는데도 꼿꼿이 선 채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고을의 나무꾼인데 나무를 팔러 나왔다가 모두 불한당한테 빼앗기고 하루종일 굶었습니다요. 밥 한끼 줍시오.”

하인이 그의 위아래를 훑더니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야, 이 새끼야, 눈알이 뵈는 게 없어?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지랄이야? 니놈들한테 밥주는 곳이 아니야!”

“부잣집으로 보이니 밥 한술 얻어먹고 가려고 일부러 찾아 왔습니다요.”

그렇게 말하고 나무꾼이 하인을 제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당돌한 행동이었다.

“야, 씨발놈아, 거기 안서?”

한달음에 하인이 달려오더니 그의 앞을 가로막고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보자보자 하니 겁대가리가 없군. 여기는 고을 수령님 안댁이시다. 니 모가지 하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쳐낼 수 있는 곳이야. 이 새끼, 분수도 모르고 깝죽대고 있어. 니 밥주는 곳이 아니니 당장 꺼져! 밥얻어 먹으려면 먹을만한 데 가서 쳐먹거나 말거나 해야지, 여긴 니깟놈 밥 차려줄 집이 아니라니까!”

“한끼만 줍쇼. 인간차별하면 안되지요.”

“그래? 그럼 니 말대로 주마.”

하인이 추녀 밑에 있는 개밥그릇을 들어 냅다 그의 얼굴에 끼얹었다.

“아니, 이럴 수 있소?”

“그럴 수 있지!”

대청 마루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수령이 대뜸 대꾸했다. 그리고 호통치듯 말했다.

“돌쇠야. 저것이 몹시 허기진가보다. 헛간에 돼지먹일 것들이 있을 것이다.”

“네이, 알겠습니다.”

하인이 헛간에서 꾸정물을 가져와 그에게 퍼부었다. 돼지밥을 뒤집어쓴 나무꾼은 꼭 비맞은 수탉 꼴이었다. 수령이 그 모습을 보고 하하 웃으며 좋아라 했다. 대문 밖으로 사라지는 그의 등뒤에 대고 수령이 불쾌하다는 듯 퉁을 놓았다.

“고현 것, 아랫것이라 배운 것이 없어서 늘 저렇게 천하게 산단 말이다. 나무꾼이면 나무꾼답게 머리 조아리고, 눈을 내리깔고 살아야지. 저것이 머리가 돌지 않고는 저렇게는 못하지.”

나무꾼은 진영으로 돌아와 정식 비단 관복을 입고 혁대에 장검을 찼다. 그러자 의젓하고 위풍당당한 군관이 되었다. 그가 바로 정충신이었다.

정충신이 다시 수령 집을 찾아 솟을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하인이 나오더니 그를 보고 화들짝 놀라면서 “나리께서 행차십니까?” 하고 허리를 구십도 각도로 꺾어서 인사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수령이 버선발로 쪼르르 달려와 그를 맞았다.

“어인 행차십니까. 관복을 보아하니 장만 관찰사 나리 직속 부관 아니십니까.”

자리에 정좌하자 점심시간이었다. 수령이 산해진미의 점심상을 내왔다. 호랑이 눈깔탕에 멧돼지고기 중에서도 최상급 부위 항정살도 올라왔다.

“젊은 나리, 어서 드십시오. 호랑이 눈깔은 며칠전 사냥때 잡아온 싱싱한 것입니다. 멧돼지 향정살은 마리 당 반근 밖에 안나오는 부위입니다. 산삼 녹용 인삼 지렁이 독사 구렁이를 먹고 자랐기 때문에 한 점만 먹어도 소피볼 때 요강이 구멍이 나버리지요.”

그러나 정충신이 음식들을 모조리 쓸어담아 자신의 관복에 쏟았다.

“젊은 나리 왜 그러십니까.”

수령이 깜짝 놀라고 있었다.

“왜요? 수령 나리께서는 때묻고 헤진 옷을 입은 나무꾼한테는 쉰 개밥, 돼지밥을 주었소이다. 사람을 보고 음식을 차린 것이 아니라 행색을 보고 차린 것이니 이 산해진미는 지금 입은 관복에게 주어야지요.”

대번에 알아보고 수령이 넙죽 엎드렸다.

“젊은 나리, 잘못했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못알아봐서 황공하옵습니다, 나리.”

이 광경을 바라본 하인도 덩달아 넙죽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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