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고 드러내자”

김은성(전남과학대 교수)

너 답지 않게 왜 그래?/나 다운 게 뭔데? 네가 날 알기나 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 하지 마/ 영화나 드라마 혹은 일상생활에서 한번쯤을 들어봤을 법한 대화내용이다. 우리는 간혹 상대에 대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판단하려한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해 보라고 하면 순간 멈칫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필자에게 3월은 어느 때보다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달(月)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처음 만나는 신입생들이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느라, 혹은 드러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이 보내는 신호를 빨리 감지해내느라 필자의 신경이 온통 그들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늘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고 지난해에 미처 제대로 알지 못한 학생들을 대하면서 알게 된 사실 한 가지는 문자 메시지나 SNS 채팅을 통해 자유롭게 대화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정작 얼굴을 마주보고 앉으면 그 분위기와 대화의 내용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갖 이모티콘과 유행어가 난무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신의 감정과 그때의 기분을 말 대신 그림문자로 대신하는 것이 익숙해져버린 탓이리라.

이런 상황은 필자가 겪은 학생들과의 관계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직장에서,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마주하는 SNS상에서의 대화와 상대와 직접 대면한 상태에서의 대화의 괴리감은 독자들도 한번 쯤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그런 상황이 당황스러워 메신저를 통해 대화했던 사람이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과 다른 사람인가 하는 착각도 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입을 통해 전해지는 대화보다 활자를 통해 전달하는 의견이 더 자연스러운 사회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필자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얼굴을 마주보고 만나는 사람들의 대화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처음 만나는 신입생들과의 대화는 늘 긴장되고 기대되는 일이기도하다. 자신을 한껏 드러내고 싶은 학생은 굳이 필자의 질문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입을 작게 벌리고 너무 작은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는 학생에게도 질문은 사치스럽다. 서로 다른 이유로 많은 질문이 필요하지 않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필자의 이야기를 먼저 건넨다. 물론, 일방적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이만큼 되어 있는 사람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지나야 비로소 닫힌 입을 열고 자신에 대해 조금씩 알려준다는 것을 몸소 겪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학생과의 대화가 더 수월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나름의 이유와 표현 방법의 차이로 그렇게 보이는 학생들이 많아 그 부분을 보듬어주면 정 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다.

필자는 이러한 모습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미처 다 알지 못한 채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가상의 공간에서의 대화와 실제 상황에서의 소통에 차이가 생기고 정작 정확하고 정정당당하게 의견을 피력해야하는 중요한 상황에는 게시글이나 댓글이라는 가림막 뒤에 숨어 비겁한 모습으로 의도치 않은 상처를 남기는 것이 아닐까.

어느 사제는 자신이 있는 본당 교우들에게 손거울 한 개씩을 나누어주며 한 주 동안 자기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루에 한 가지씩 찾아보라는 과제를 주었다고 한다. 필자는 이 과제에 외적인 아름다움을 찾기보다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표정을 잘 살펴보면 그 날 하루 동안의 자신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보일 것이라는 깊은 뜻이 담겨있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야 상대에게도 너는 어떤 사람이구나, 너는 이러한 사람이구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수학 공식을 가르치는 수학선생님이 수업 전에 가르칠 공식을 공부해서 정확하게 파악해서 학생들에게 자신 있게 가르치듯이 말이다.

남들이 말하는 내가 아닌, 진정한 내가 바라본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찬찬히 들여다보자. 그리고 나를 드러내자. 그렇다면 적어도 포장된 나의 모습과 말에 상처받는 이는 적지 않을까. 무엇이든 다짐하고 시작하기 좋은 월요일이다. 당장 화장실에라도 달려가 지금 나의 모습이 어떤지 들여다보자. 굳이 거울이 없어도 괜찮다. 잠시 눈을 감고, 혹은 생각에 잠겨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있는 그대로 진심을 다해 나를 드러내보자. 모두가 이런 한 마음이라면 밝고 건강한 사회는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