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 SRF 분쟁과 지역정치의 현주소
조진상(동신대 도시계획학과 교수)

조진상

2001년 상무소각장 건설을 두고 행정과 주민간에 큰 분쟁이 발생했다. 시 입장에서는 이미 90% 가량 건설되어 준공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를 철회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주민입장에서는 꿈에 부푼 채 멋진 신도시에 입주를 시작했는데 난데없는 소각장 건설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 했다.

수천명의 군중이 광주시청앞에 모여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곤 했다. 분쟁조정위원회가 구성되어 수많은 회의를 거듭하며 1년여간 운영되었으나 결국 가동으로 결론이 났다. 분쟁의 불씨를 고스란히 안고 극심한 반대속에서 억지 출발한 상무소각장은 결국 15년만에 문을 닫게 되었다.

20여년 전 상무신도시 상황이 빛가람 혁신도시에서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1년 3개월 넘게 매주 지속된 시민들의 집회와 반대속에 거버넌스 협의체가 올초 구성되었고 지난 주 6차 회의를 마쳤다.

상무소각장 분쟁과 혁신도시 SRF 분쟁은 닮은 점이 많다. 쓰레기 분쟁이라는 점, 신도시 건설과 관련된 점, 거의 또는 전부 다 지어진 상태에서 뒤늦게 분쟁이 발생된 점, 주민들은 건설 사실을 잘 몰랐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나 두 분쟁은 닮은 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다. 상무지구는 자발적 입주인데 비해 혁신도시는 정부의 균형발전정책에 의해 반강제로 이주한 사람들이 많다. 상무소각장은 광주시 자체 쓰레기 시설인데 비해 SRF는 타 지역 쓰레기가 97%를 차지한다. 상무소각장은 쓰레기 처리를 위한 도시필수시설이지만 SRF는 지역난방공급을 위한 연료 선택의 문제다.

이외에도 큰 차이점중 하나는 의사결정구조다. 상무소각장 분쟁은 행정과 주민의 단순한 구조였지만 SRF 분쟁은 거버넌스에 참여하고 있는 산업부, 한난, 전남도청, 나주시청, 주민대표의 5개 기관·단체 외에 순천시 등 전남의 5개 시·군과 광주광역시, 4개의 전처리시설 업체도 관련되어 있다. 의사결정이 쉽지 않은 구조다.

거버넌스 회의에서도 5개 기관·단체중 하나라도 동의하지 않으면 쉽게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 회의때마다 살얼음판, 외줄타기나 마찬가지인 협상이 더디게, 숨막히게, 아슬아슬하게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SRF 주민대표들은 원도심 일부 주민들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이색적인’ 주장까지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힘든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 3월 26일 6차 거버넌스 회의를 통해 70% 주민투표와 30% 공론화 반영 외에 2개월 준비+2개월 시험가동을 통한 환경영향조사 소식이 알려지면서 혁신도시 주민들은 연일 불면의 밤을 지새고 있다. 이틀후 열린 주민설명회와 지역 SNS 상에서 주민들은 지역 정치권과 행정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환경영향조사과정에서 광주쓰레기반입과 시험가동, 그리고 결국에는 SRF 시설이 가동될지 모른다는 불안 등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주민투표와 공론화 과정에서 ‘지역정치의 부당한 개입’에 대한 우려, ‘국가균형발전정책의 희생양’, SRF가 ‘시즌2 정책의 걸림돌’이라는 불만도 자주 표출되고 있다. 개별 주민들로서는 달리 대응할 뾰족한 수도 없고 절박한 마음에 서명운동과 청와대 청원, 지역정치인 문자발송 등이 진행되고 있고 등교거부, 거버넌스 회의날 대규모 주민집회도 거론되고 있다.

SRF 분쟁을 가까이에서 겪으면서 나주 지역정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 걸까? 권력? 완장? 돈? 조직? 행세? 그들에게 주민이란 어떤 존재일까? 유감스럽게도 다수 시민들의 의사를 대변하고,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지역정치의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정치란 다 그런 것일까?

SRF 분쟁 해결과 관련해서 다른 도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정치의 일반적인 후진성만을 탓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전주에서 (정동영 국회의원, 김승수 전주시장), 여주와 원주에서 (김기선 국회의원, 이항진 여주시장, 원창묵 원주시장), 충남 내포 신도시에서 (안희정 전 충남 도지사) 지역정치인들이 SRF 분쟁해결을 위해 앞장서는 사례를 흔히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주에서 정약용의 목민관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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