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5장 변경<306>

정충신이 엄하게 꾸짖었다.

“듣기로소니 탐악질이 심하다고 들었소. 마을 사람들을 끌어모아 호랑이 사냥을 가서는 호랑이를 활로 쏘아 잡은 것까지는 좋은데 날이 어두워지자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수습하러 가서 호랑이가 없자 사람들을 닦다구리 했다지요?”

“그런 적이 있습니다. 마을 장정들이 몰래 가져간 것이오. 호랑이가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화가 나지요. 그런 도적놈들을 가만 두어야 하겠소?”

“그래서 마을 장정들을 주리를 틀고, 범칙금으로 쌀 몇가마씩 거두들인 것이요?”

“호피 하나면 가대가 일어설만큼 값진 보물이관대, 그 정도 처분은 과한 것이 아니오.”

“마을 사람들이 가져가지 않았는데 가져갔다고 치도곤을 하면 누가 승복합니까.”

“천한 것들이 훔쳐간 뒤 오리발을 내미는 데야 방법이 없지요. 없는 것들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지요.”

“거짓말은 호랑이가 하는 것이요. 호랑이는 분명 수령의 화살을 맞았소. 그러나 화살을 맞고 그 자리에 얌전히 있을 호랑이가 어디 있겠소? 죽자 하고 내뺄 것이고, 가장 안전하다는 깊은 산속에 숨거나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오. 그것이 호랑이의 본능이오. 결국은 그런 깊은 곳에서 죽는 것이요. 그래서 찾지 못하는데 마을 장정들이 가져갔다고요? 찾지 못한 것을 가져갔다고 우기면 세도 가진 자가 이기겠지요. 물론 호피 한 장이면 살림 펴는데 욕심이 안날 리 없겠지요. 하지만 수령의 횡포를 아는 자들이 그걸 훔쳐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가져가겠소. 안 당하고 사는 것이 마음 편하지 그것 하나 훔쳐가지고 평생을 싸대기 맞고 갇혀살려고 하겠소?”

“내 생각이 짧았소.”

그제서야 군수가 꼬리를 내렸다.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데야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탐악질로 빼앗은 물건이 곡간에 가득찼다고 하는즉, 그걸 푸시오. 안그러면 당장 장만 감사께 보고하겠소. 그러면 함경도 북변 한지 중의 한지라는 아오지로 쫓겨날 것이오.”

“젊은 나리, 그곳은 살아도 못사는 곳입니다요. 천하에 없는 유배지 아닙니까요. 그곳에 쳐박히면 살아나오지 못한다고 했소. 살려주시오.”

그가 울상을 지으며 정충신의 소매를 잡고 하소연했다. 

“백성을 똥파리 정도로나 아는 인성이 못된 자는 이속(吏屬)도 되어서는 안되오. 그런 처지에 군수 나리까지? 귀하에겐 관이 너무 무거우니 내려놔야지.”

“젊은 군관, 한번만 봐주시오. 저에게 어여쁜 첩실이 있소이다. 데려가셔서 하인으로 쓰십시오. 맘에 들면 영영 첩으로 삼으셔도 됩니다. 재물도 드리겠습니다.”

그가 허리춤에서 쇳대 고리를 끄집어냈다. 쇳대가 자그마치 한 묶음이 되었다.

“나를 주는 거요?”

“다는 아니고 일부 드리는 것입니다.”

정충신이 꾸러미를 두말없이 잡아채 쥐고 관찰사가 집무중인 선화당으로 달려갔다.

“심성 고약한 모리배 수령의 열쇠꾸러미를 가져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장만 관찰사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너의 지혜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로구나. 내가 다 시원하다. 월권을 하긴 했다만 내 대신 준엄하게 꾸짖었으니 잘한 일이다.”

그러면서 장만이 다시 말했다.

“곡간을 풀어서 힘겹게 사는 고을 사람들에게 나누어라.”

정충신은 병사 열을 대동하고 군수의 사창(司倉)으로 달려가 곡식을 풀어서 고을 사람들에게 분배했다. 소문이 나자 인근 무산 풍산 연사 보천 계하 송학에서도 덩달아 곡식을 풀었다. 첩첩산중에 조나 수수가 주식일 수밖에 없는데 지방관의 사창을 털자 고을 주민들이 모처럼 이팝을 먹는 소이연(所以然)이 되었다. 어느날 정충신이 장만 관찰사에게 보고했다.

“제가 돌아보니 선봉 나진 청진 회성 영천 단천 북청의 성은 쓸만합니다. 그런데 함흥 부성(府城)이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외침을 막을 방도가 약합니다. 백성들을 모아 부성을 축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 하라.”

부성을 쌓는다는 포고문을 내걸자 집집마다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종전에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전에는 곤장을 쳐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감사 나으리가 곡식을 풀고 생애 처음 이팝이라는 것을 먹어본 백성들은 저절로 힘이 솟구쳐 자발적으로 성 축조에 힘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날 장만 관찰사가 정충신을 불렀다. 

“내가 진청부사(陳請府使)로 명나라에 가게 되었다. 요동반도를 건너야 하는데, 누르하치가 버티고 있으니 문제로다. 네가 나를 수행해 여로를 순조롭게 열어주기 바란다. 누르하치의 자식들과 친하다면 연행(燕行)을 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연경(북경)에 가서도 네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정충신은 함흥 부성을 축성하다 말고 장만 장군 사신단의 일원으로 명나라로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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