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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5장 변경<309>

다이샨이 흥분했던지 버럭 소리 지르며 말을 계속했다.

“내 말 잘들어라. 우리는 명나라에 7대한을 갖고 있다. 아버지께서도 우리에게 늘 말씀하시지. 아버지가 혹 죽을지라도 명에 대한 7대한은 잊지 말라고. 그리고 반드시 원수를 갚으라고 말이다. 그것이 기마민족의 자존심이라고 하셨지.”


“7대 한이 뭔데?”

“첫째, 명이 나의 증조할아버지 교창가와 할아버지 타쿠시를 죽인 원한이 있다. 둘째, 명이 하다부와 예허부 부족을 편애하고 건주여진을 차별한 원한이 있다. 우리를 완전 개밥그릇 취급했지. 특히 건주여진 여자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명군의 위안부로 삼았다. 셋째, 명이 아버지 누르하치와 맺은 영토 협약을 파기하고 지들 멋대로 우리 영토를 침범하여 주민을 포로로 잡아갔다. 넷째 예허부를 돕기 위해 군대를 보내어 우리 건주여진을 치게 한 원한이 있다. 다섯째 아버지와 혼약한 여인을 빼앗아 몽골에 시집보내버린 것에 대한 원한이 있다. 이때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쏟은지 아나? 사나이 눈물을 너 모르나?”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너도 원한이 있었단 말이냐?”

“당연하지. 사나이 사랑이란 새닢에 난 이슬이며, 가슴을 아리게 하는 슬픔이며, 사나이 가슴을 고동치는 북소리 아니냐. 그것을 명나라가 앗아가버렸단 말이다. 전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범 가죽을 사랑하는 것과는 완전 차원이 다르지. 아버지의 가슴을 황량하게 했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여섯번 째는 뭐냐.”

“여섯번 째는 우리 건주여진의 영토인 시하, 무안, 삼차 땅을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우리 삼촌을 죽이고, 고모들을 잡아갔다. 만행을 저질렀단 말이다. 일곱번째는 요동 총독 소백지가 건주여진에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른 것에 대한 원한이 있다. 이것이 우리 아버님의 용맹을 길러주고, 우리 아들들 또한 마음 속으로 다지는 힘이 되었다. 복수의 힘이다. 따라서 명 황제의 배때지에 칼을 쑤셔박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다. 그런 다음 중국 역사를 새로 쓸 것이다.”

“선전포고한 건가?”

“사태를 좀더 보고 있다. 중국은 원숭환과 모문룡을 시켜서 우리 건주여진을 집적거리는데, 이럴 때 우리는 내부적으로 힘을 비축하고, 물자를 모으고, 여타 여진 부족을 결속시켜 나가고 있다. 우리가 명을 무너뜨리려면 제 여진 부족들이 뭉쳐야 할 것이다. 헌데 배신자가 나오고 있다. 그 배신자 중 하나를 지금 내가 가서 부수고 왔다. 후이파 족은 이제 종(種)이 끝날 것이다. 여인네들을 모두 데려와서 건주여진 씨를 받게 할 것이다. 대저 여진통일이 눈 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너희 조선이 아직도 눈치를 모르고 있단 말이다.”

“왜 우리가 문제란 말인가.”

“기울어가는 나라에 계속 기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세상 만물의 이치는 한번 차면 기울게 되어있다. 중국의 왕정이 250년을 넘어간 나라가 있더냐? 길면 200년, 어쩔 때는 몇 개월 못가서 망해버린 나라도 있다. 그리고 지금 명은 잔명이 다했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죽자하고 명의 불알을 잡고 있다. 썩은 동아줄을 잡고 군신 관계를 맺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의리와 예법의 나라다.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한 나라를 섬기면 다른 나라와는 척을 져야 하냐? 다른 나라와도 우호 관계를 갖는 것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외교전략 아니냐. 물론 구질서와 구세력들이 그렇게 몰아가겠지. 기득권을 향유하기 위해 이미 맺은 인연을 지속시키고, 그런 가운데서 이익을 취하려고 하겠지. 다른 길을 가자고 하면 역적으로 몰아붙여 죽이고, 배역도당이라고 모해해서 잡아버리겠지. 그러니 변화가 있을 수 없단 말이다. 자기들이 만든 우상을 강제해 떠받들라고 하지만 그 우상은 이미 병들고 늙고 썩어서 일어나질 못해. 서산에 기운 해란 말이다. 그런 나라를 따르는 것이 현명하냐? 너희는 주체성도 없냐?”

“어쨌든 우리가 무사히 북경에 도착하도록 길을 안내해주기 바란다. 광해 세자께서 왕위에 오르면 너희에게도 좋은 일 아니냐. 책봉되도록 도와라. 그분은 여진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보고 계시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너희 사절단에 우리 병관 둘을 따라붙이겠다. 조선사신단으로 이름 올리고 함께 갔으면 좋겠다.”

“간자(間者)로 넣겠다는 것이냐?”

“우리가 길잡이한다고 생각해라.”

정충신은 장만에게 이를 보고하고, 다음날 이들과 함께 행장을 꾸려서 북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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