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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5장 변경<310>

며칠동안 산을 넘고 물을 건넜다. 사막 같은 대평원에서는 말을 달렸다. 다이샨이 조선 사신단에 딸려 보낸 여진족은 알고 보니 조선의 후예였다. 40쯤 돼보이는데 학자적 풍모였고, 조선말도 유창했다.

선양의 객관에 이르러 각기 여장을 풀고 모두들 잠이 들었을 때, 여진인이 정충신의 방을 찾았다.


“술 한잔 하자.”

그의 손에는 호로병이 들려져 있었다. 술은 수수를 증류시켜 만든 마오타이주였다.

“이 술은 중국 귀주성에서 생산되는 증류주이지. 우리 고장에서도 많이 제조해 마신다. 마시면 몸 속에 따뜻한 기운이 북돋고, 오랫동안 향이 남는 술이야. 많이 먹어도 뒤끝이 개운하지.”

한잔 받아 마시니 과연 톡 싸아하니 도수 높은 술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 이름은 오갈피대다. 성이 오씨로서 조선인 3세다. 그래서 조선이라면 왠재 가깝게 느껴진다. 나의 핏줄의 나라를 그동안 주욱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그런데 답답한 것이 너무나 많다.”

“무엇이 답답하다는 것인가.”

“쓸데없이 우월감에 젖어있단 말이다. 그것이 자신들을 망치는 족쇄가 되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갖춘 것도 없으면서 우쭐대기는... 대대로 중국 북방의 퉁구스족, 여진족, 말갈족은 한민족에 대해 친밀감을 표시하며 협조적이었다. 이 부족을 잘 활용하면 싸우지 않고도 통상을 하고 교류를 하면서 영토를 확장하는 셈인데, 그런 외교력은 없이 무턱대고 천시한단 말이다. 언제나 야만인 취급을 한다. 그래 솔직히 학문은 우리가 떨어진다. 그리고 못된 놈들이 조선 변경을 넘나들며 약탈을 한다. 그러나 본래 지닌 것은 조선에 대한 존경심이다. 그래서 왜란이 났을 때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던가.”

정충신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그를 통해 여진족의 동태나 기밀을 빼낼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우리의 옛 이름은 정 군관도 알다시피 애신각라(愛新覺羅)다. 한자 풀이로 하자면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로 우리의 고국으로 안다는 의미다. 그러면 너희가 명과 가까워야 하나, 우리 부족과 가까워야 하나?”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지료’인데,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를 뜻한다고 했다. 신라 왕실의 성인 ‘김씨의 겨레’라는 것이다. 그런데 후손을 따뜻하게 맞이하지 않고 한낱 오랑캐로 멸시해왔다.

“우리는 고려와 조선을 어버이의 나라로 섬겼지. 그래서 누르하치 대장이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고 편지를 써서 조선 조정에 보냈던 거야. 그런데 돌아온 것은 찾아간 밀사를 잡아가두고, 호의를 걷어차버렸지. 그대들은 왜 동족을 따르지 않고 망해가는 나라를 돕는가?“

정충신도 그 점 명과의 명분론에 매여 여진족을 형제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답답했다. 오갈피대가 다시 말했다.

“우리는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섬겼다. 누르하치 대장도 백두산 인근에서 태어나셨다고 자랑했다. 백두산 북쪽 지역에는 조선인이 많았고, 그들 중 상당수가 고대로부터 한민족으로 살았다. 누르하치 대장은 젊었을 적 평안도 지방 관현 벼슬을 하나 달라고 간청했으나 거절당하셨지. 조선의 벼슬아치 경력으로 글을 아는 신분이 되어 한 세상 흔들 요량이었는데 이걸 거부했단 말이다. 조선 벼슬아치를 명예직으로 주면 그도 명실상부하게 조선 사람이 되고, 광활한 중국 북방 지역을 조선과 함께 관리할 수 있었을 거야. 그러면 고구려와 발해의 고토를 회복하는 셈 아닌가. 답답한 일 아닌가?”

그는 이런 말도 전했다.

“만주 족속이 건설한 제일차 제국이었던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하고 남송을 압박할 때에도 반도의 고려는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함으로써 금과의 충돌을 피했고, 금나라 또한 군사력의 낭비 없이 중원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이차 제국으로 흥기하고 있는 지금 조선은 중원 왕조인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명분만을 중시하여 후금과의 관계를 적대시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조선 조정은 스스로를 지켜낼 군사력도 전략도 없으면서 후금을 오랑캐로 몰아붙여 또다른 적을 만들고 있단 말이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당신네 나라가 명을 치지 않았다면 우리도 당신네 군대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국인 명나라를 치면서 우리를 돕겠다고 하니 우리가 그걸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그러면 명이 우리를 가만두겠는가. 기망한다고 적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는 알고 둘을 모른단 말이다.”

그가 정말 답답하다는 듯이 병째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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