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5장 변경<311>

“조선이 지리적으로 명에 가깝나 여진에 가깝나. 종족으로도 명 쪽인가, 여진 쪽인가? 게다가 너희는 요양(遼陽)을 지나야 북경에 도달한다. 그러면 길목을 지키고 있는 우리에게 자릿세를 내야지. 헌데 자릿세를 안내고도 갈 수가 있단 말이다.”

“어떻게?”

“우리와 가까우면 낼 필요가 없지. 우리는 한때 고려에 조공을 바쳤다. 백두산과 두만강 압록강 북변 유역이 한민족의 발상지 아닌가. 우리 역시 그 후예다. 그러니 너희와는 형제국이다. 그래서 매년 토산물과 여러가지 조공품과 진상품을 고려로 보내고 신하가 되기를 자청했지. 고려의 별무반이 단속하면 물러났고, 대신 우리들 살 곳을 요청했다. 고려를 상국(上國)으로 여기며 충성을 다하였지. 그때는 평화로웠다. 이런 선린 관계를 그후에도 꾸준히 지속하려고 했는데 바보같은 관료들이 몇몇 여진 부족의 행패에 적대시하며 전선을 긴장으로 몰고 갔다. 그러면 변경이라도 단단히 지켜야 하거늘, 동북 9성을 쌓은 지 몇년만에 모두 철수해버렸다. 9성을 여진족에게 반납하고 돌아선 꼴이 되었다. 정계비도 호랑이가 무섭다고 함경도를 넘지 못하고 중간쯤에 박아놓고 도망을 가버렸다. 이 통에 너희 나라 국경선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지. 땅에다 목비 하나 새겨서 꽂아놓으면 다 내 땅이 되는데, 짐승이 무섭다고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사라졌단 말이다. 본래는 저기 흑룡강변까지 너희 땅 아니냐. 요동반도는 물론이고 말이다. 문명국인 조선이 흑룡강, 노령(露領) 아무르강까지 영토를 확장하면 우리 부족이 그것을 따르고, 형제 종족의 자긍심으로 충성할 터인데, 함경 이남에 슬그머니 비목 놓아두고 도망가서 문을 닫아버렸단 말이다. 그런 뒤 너희들은 완전 개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한다는 것이 고작 소수 부족이 식량 약탈한 것 가지고 따따부따 따지면서 기분나빠 한단 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다. 우리와 친선을 맺으면 된다.

“그야 너희는 학문과 예법을 모르고, 명나라는 전통적으로 거기에 충실한 문명국 아닌가. 존경할만하니 따르는 것이다. 너희가 천지분간을 못하고 날뛰지만 않았다면 우리도 대접했을 것이다.”

“솔직히 우린 무식하다. 그러면 부모국으로서 깨우치면서 이끌면 되지. 우린 짐승 사냥으로 먹고 살아온 부족 아니냐. 그런데 지금 상황은 완전 다르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에 집착한 나머지 여전히 우릴 깔보면 망가질 수 있어. 외교란 명분도 좋지만 궁극적으로는 이익으로 따지는 것 아니겠나.“

오갈피대는 취하자 대놓고 다구리하듯 지껄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왜적이 너희 나라 전 국토를 유린하는데 우린 끝까지 예의를 지켰다. 우리 여진은 의리에는 한없이 약하지만, 무시하고 우쭐대는 종족에게는 용서가 없다. 야만인 취급하면 골로 가는 수가 있어. 내 말 분명히 새겨듣기 바란다. 그나마 내가 나서서 누르하치 대장이나 그 아들들의 분노를 끄고 있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다. 내 말 새겨듣고 조정에 돌아가면 꼭 보고하거라.”

“여진 부족들이 두만강과 압록강 변경에서 약탈을 일삼지만 않았다면 우리가 그렇게 볼 이유가 없었다니가.”

“일개 도둑떼 문제로 국가대사를 저버리면 되는가. 쌀 몇됫박 훔쳐갔다고 징징 짜지 말고 넓게 생각하라. 머리 큰 사람들이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면 큰 일을 못한다. 작은 것을 얻고자 하다가 큰 것을 놓치면 그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수급(首級)들이 교류하면서 해결할 수 있으며, 더큰 것을 도모할 수 있다.”

요녕성과 길림성 흑룡강성을 근거지로 살아온 여진족·말갈족(후에 만주족)은 한때 고구려와 발해에 속했다. 명나라는 요동평야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요동 외곽의 동북지역은 여진족의 땅으로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은 희미했다. 여진족은 크게 3개의 부족으로 나뉘는데 장백산(백두산) 북부와 길림 남부지역은 건주여진, 송화강 중류 일대의 해서여진, 우수리강과 흑룡강 유역과 두만강 유역의 야인여진(혹은 동해여진)이다. 이중 건주여진이 조선족과 가장 가깝다.

세 부족 모두 명나라 통치체제 안으로 흡수되지 않았고, 때로는 협조적으로, 때로는 갈등과 협력의 길항관계에 있었다. 여진족의 조상이 몽고(원나라)에 멸망한 뒤 400년 만인 지금 누르하치 대장이 다시 여러 부족을 통합해 흥기하고 있다.

누루하치 부자들의 위업은 단순히 강력한 무력으로 영토를 확장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정비와 사회 개혁에 있어서 과감했다는 점이다. 다민족 공동체의 대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중국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광활한 지역과 다양한 민족을 포용하는 대제국으로서 성세(盛世)를 이어가는 토대를 구축한 것이다.

이렇게 길게 설명하고 난 뒤 오갈피대가 거듭 말했다.

“외교적 역량을 키워라. 넌 대국 말 잘하지 않느냐. 전쟁은 피아의 구분만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외교란 적에게도 무기를 팔아먹는 인간 존재의 최상의 예술이다. 오직 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라. 외교가 가르치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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