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이계홍 역사소설 깃발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2부 5장 변경<313>

돌이켜보니 왕의 의주 몽진(피난)은 조선의 암울한 미래를 암시해주는 것 같았다. 선조가 세상을 떠난 지금 그게 새삼 떠오르고 있었다.

1592년 음력 4월 그믐날 밤, 선조는 빗줄기가 드센 어둠을 뚫고 궁을 빠져나갔다. 몇몇 문무백관이 날이 밝을 때 떠나자고 간언했지만 왕으로서는 한시가 급했다. 누군가 뒷덜미를 잡고 패대기칠 것만 같아서 잠시도 머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은 환한 대낮에 떠나면, 민낯으로 백성들 보기가 민망했다.

임금이 돈화문을 나와 안국방을 지나고 경복궁 앞에서 남으로 꺾었다가 네거리에서 다시 서쪽으로 꺾어 돈의문을 지났다. 빗줄기가 드센 가운데 무악재를 넘고 홍제원에 이르자 동이 텄다. 말을 탄 임금과 신하들은 물론 도보로 걷는 내시·호위병들이 흠뻑 젖고, 왕비, 후궁, 백관의 부인들이 탄 가마 행렬은 진흙탕속에 교꾼들이 몸을 가누지 못해 넘어지는지라 여자들의 속곳이 들리고, 치마가 흙탕물에 젖었다. 행렬이 긴 데다 비까지 내리니 몽진 행렬이 더디기만 했다.

녹번, 삼송, 벽제관에 이르자 해가 중천에 떴다. 백성들이 소문을 듣고 나와 통곡했다. 임금이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다는 설움이 복받쳐서 머리를 조아리며 엉엉 소리내어 우는 자도 있었다. 어느새 도성에도 임금이 궁을 버리고 떠났다는 소문이 퍼지자 백성들이 순식간에 몰려나와 경복궁을 불태우고 전각을 불지르고 기물을 부쉈다. 민심은 극도로 험악해졌다. 어버이가 자식들을 버리고 도망을 갔는데, 그런 자를 하늘같이 떠받들고 살았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

선조가 파주를 거쳐 임진강에 이르자 밤이 되었다. 비가 내린 뒤끝이라 날씨는 추웠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신하들과 무장들이 인근 민가로 가서 닥치는대로 목재를 뜯어와 불을 피웠다. 다음날 어가 행렬이 강을 건너는데 나룻배가 부족했다. 인근 마을의 대문짝과 방문짝을 뜯어 뗏목을 만들었다. 이윽고 강을 건너자 나룻배와 뗏목을 모두 불태웠다. 행여나 왜군이 끌어다 쓰면 어쩌나 싶어서 태워버린 것이다. 적진에 들어가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건넌 다리를 불태운다는 말은 있어도, 백성의 문짝을 뜯어 건넌 뒤 태워버리는 경우는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이윽고 평양에 당도했다. 임금은 평양 백성들에게 결사항전을 외쳤다. 그러나 탄금대전투에서 신립 장군이 이끈 5만 군사를 물리친 왜군은 한달음에 한양을 점령하고 바람보다 빨리 북으로 진격했다. 왕은 다시 야반 도주했다. 평양성이 함락되고, 선조는 압록강 변경 의주로 쫓겨왔다. 그리고 행궁을 차렸다.

요동 도독과 명 황제에게 도강할 배를 보내달라고 눈물어린 편지를 보냈다. 명은 자국에서 왜와 전쟁을 치를 것이 두려워 선조에게 배를 보내는 것을 미적거렸다. 일부에선 왜군이 저렇게 빨리 한양과 평양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조선이 혹 왜와 짜고 명을 치기 위해 진격해오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을 품기까지 했다. 선조는 그 사정을 모르고 매일 통군정에 올라 명의 배만을 기다렸다. 그에게는 나라의 안위보다 일신의 보위만이 생존의 근거였다.

이때 전라도 광주에서 만 16세의 소년 병사가 숨을 헐떡이며 2천5백리 길을 달려왔다. 매일 백리 씩 뛰어서 스무닷새만에 의주행재소에 당도한 것이다. 그는 광주 목사 권율이 전라도 이치·웅치전에서 왜군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6군단 병사를 무찌르고 호남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장계를 숨겨 왔다. 체포되어 압수당할 것을 염려해 기다란 장계 지필을 새끼를 꼬아 걸망을 만들어 감쪽같이 숨겨 메고 달려왔다. 호남은 곡창 지대로서 아군의 병참기지가 될 것이니 조금만 버티면 원기를 회복해 왜를 몰아낼 수 있다. 그러니 제발 압록강을 건너지 말라는 호소문이었다.

그러나 선조는 어버이 나라 명나라만을 바라보고 사는 왕이었다. 조선의 장군들이 전공을 세워도 명나라 군대의 구원만 못하다고 내리깎으면서 오직 명나라만이 자신을 구원할 존재라고 여기고 있었다. 자식이나 신하들에게 의심병을 일삼고, 중국에는 끊임없이 사대하고, 그래서 왜 일국의 왕을 하는지를 알 수 없는 임금이었다.

그런 임금이 승하했다. 정충신은 만감이 교차했다. 남쪽 하늘을 우러러 곡을 하긴 했지만 내심으로는 승복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때 건주여진의 누르하치 둘째아들 다이샨이 조선인 포로를 한명 데리고 왔다.

“정충신 첨사, 조선왕이 죽었다니 그대가 원하는 바가 아닌가? 그대는 광해의 편 아니었어? 그래서 미침 조선왕에게 쫓겨서 우리 진영에 와있는 조선인 군관을 데라고 왔다. 때를 벼르고 있던 사람이니 대화를 나누어 보라.”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계홍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