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광해시대 1장 역사 청산 <315>

정충신이 칼을 뽑아들자 김말대도 삼지창을 겨눠 그와 일합을 겨룰 태세를 갖추었다.

“어허, 왜들 이래. 칼을 함부로 빼드는 것이야말로 야만인 아닌가!”

다이샨이 제지했다. 야만인 출신이 동방예의지국 사람을 나무라고 있는 셈이었다. 정충신은 대신들을 도매금으로 묶는 가운데 이항복 대감도 처단해야 한다는 김말대의 말에 모욕감을 느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해 때로는 우울증에 빠지고, 때로는 불쑥 화를 내며 엉뚱한 일을 저지르거나, 명나라로 건너가겠다고 짐을 싸는 왕을 다스려서 그나마 조정을 안정시킨 사람이 이항복 대감이라고 생각했다. 국토가 도륙이 난 것을 가닥을 잡고, 해결점을 찾는 사람은 그래도 이항복 대감인 것이었다.

“정 첨사, 칼을 거두시오.”

그제서야 정신이 칼을 거두었다. 김말대도 슬그머니 삼지창을 내려놓았다. 다이샨이 말했다.

“내가 김 부장을 데려온 것은 중요한 임무가 있어서요. 자, 저기 군막으로 들어갑시다.”

세 사람은 군막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해서여진족의 오탕개란 자가 발악을 하고 있소. 이것들이 자꾸 우리 발등을 찍는데, 중원으로 나가려는 우리 앞 길에 장애물이 되고 있단 말이오. 이 자들만 잡으면 해서부족의 광활한 땅도 우리 것이 되는 거요. 정 첨사가 도와주어야겠소.”

다이샨이 두루말이 지도를 바닥에 펼쳤다.

“이 지도는 김 부장이 직접 현지 답사해서 제작한 해서여진족 주요 근거지요. 소탕작전을 펴는 데 요긴하게 써야 할 지도요. 검토해보시오.”

정충신은 일찍이 전라도 광주에서 한양-개성-평양-의주를 내왕하는 과정에서 산천경개의 흐름과 전략지를 파악하는 지도를 그려서 명나라 장수에게 선물한 바가 있었다. 그 지도를 토대로 왜군을 격파했다. 그러나 이건 지도가 아니라 작대기로 줄을 그어놓은 낙서에 지나지 않았다. 만주의 산맥과 강줄기의 흐름이 명료치 못하고, 해안선인지 강안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지도를 이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오. 이것으로 작전 전개를 하면 함정에 빠질 수 있소.”

정충신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떻게 만든단 말이오.”

“지나치듯 본다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지만 원근법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마을과 산, 길 뿐만 아니라 당대 사람들의 생활상과 풍속까지 담겨있는 것이 지도인 것이오. 옛 조상들의 자연관과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지도요. 지도란 한 폭의 그림과 같소. 이 지도는 작대기로 줄을 그어놓았을 뿐이오. 산과 강, 마을과 들판의 경계가 모호하오. 이걸 보고 전쟁을 하면 낭패를 볼 것이오. 지도란 무엇보다 정보를 담는 그릇이오.”

“그래도 근래 전황이 좋았지. 우리는 사실 문자도 모르고, 지도 그리는 것은 더욱 모르지. 호랑이 노루 사슴 늑대를 때려잡아 살은 먹고, 가죽은 말려서 옷을 해입었을 뿐이오. 그런데 이 자가 와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유용한 전법을 개발해주었지. 지도를 그려서 요소요소의 맥을 짚어 적의 근거지와 매복지를 가르쳐 주어서 해서여진, 야인여진 잔당을 무찌르고 있소.”

다이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땅을 그림 그리듯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김말대가 관심을 표명했다.

“그렇지요. 이 지도로는 적의 진지는 물론 부족의 근거지를 확인할 수가 없소이다. 이것으로도 적을 궤멸시켰다면 다행이지만 기왕이면 지형지세를 잘 살펴서 적을 공략하면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오.”

힘으로만 밀어붙인다고 해서 싸움을 이길 수는 없다. 여진족은 평야에서의 기병전에 능하지만 매복전과 유격전이 서툴렀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 조선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자고 해서 하는 것이오. 다이샨과의 우정도 중요하지만 나는 내 조국의 안위가 더욱 중요하오.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아버지 생각이 다르고, 열여선 형제도 다 뜻이 같을 수 없다. 여진족은 성격적으로 거칠다. 우리를 알면 당신네들도 좋을 것이다. 명심하시오.”

다이샨은 정충신이 보을하진 첨사로 발령을 받아 현지 부임했을 때도 맨먼저 와서 축하해주었다. 함경도 회령 홍산은 하늘이 손수건만큼 보일 정도로 깎아지른 듯한 험준한 산이 꽉 조이게 둘러싸고 있었다. 한 겨울 추위는 귀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매서웠다. 엔지 룽징 허룽 쑹장 안투가 가까운 곳이었다. 이곳에 야인여진 잔당이 머물고, 밤이면 약탈이 심했다.

병사들도 최변방의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각종 세금 대신 주민들이 부역으로 땜질했다. 그래도 빈궁한 곳인지라 여자들은 몸을 팔았다. 군 복무중인 병사들은 외로움을 달래느라 급료가 나오면 객주집을 찾았다. 그러다 보니 병사들이 성병에 걸렸다. 매월 행해지는 부대의 순찰 점검은 물론 닷새에 한번씩 열리는 활쏘기 훈련도 생략되는 등 변경의 군 기강은 형편없었다. 적과 싸우기 전에 병졸들은 추위와 풍기문란에 무너질 판이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