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광해시대 1장 역사 청산 <318>

백산(백두산) 강외(두만강) 흑수(흑룡강) 사이는 여진족, 만족 등 수렵민족의 주 활동무대였다. 이중 송화강과 두만강은 이들에게는 젖줄과도 같은 강이었다. 그래서 이 유역에서 여진 부족이 터를 잡았고, 지금 이들은 하나로 통일되어 드넓은 산과 들판을 기반삼아 중국 역사의 중심으로 이동해가는 중이었다. 매서운 추위와 황막한 산야는 사람이 살지 못할 땅으로 인식되었으나, 이런 악조건 하의 자연 환경에서 버티고 살아온 기마민족(수렵민족)의 강인함이 대륙을 점령할 기질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나 소소한 부족들이 그 힘을 쪼잔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이웃 마을을 공격하거나 여자를 훔쳐서 도망가는 것이었다. 정충신은 즉각 고을하진 진지로 돌아와 전 군사에게 비상을 걸었다. 그리고 뒤따르는 김말대에게 지시했다.
“지도를 펴서 방향을 잡으라.”
“백산과 두만강 사이는 삼림지대요. 지금쯤 강을 건넜을 것이요.”
“그러니 빨리 추격해야 한다. 모두 나를 따르라.”
빽빽한 송림 사이로 장엄한 폭포수가 흘려내리고 있었다. 산 꼭대기에 쌓인 눈 녹은 물이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장관이었다. 멀리서 보면 흡사 비단자락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전령은 앞서 가서 동태를 살피라.”
전령이 앞서 사라지고, 그의 뒤에 최명길과 진의 군사들이 무기를 갖춰 따랐다. 행군하는 사이 군사들은 기본 전투대형을 갖추었다. 적정을 살피던 전령이 뛰어오더니 말했다.
“골짜기에 열 명 정도의 산적이 노루와 멧돼지를 굽고 있습니다.”
과연 흰 물이 요란하게 소리를 내고 흐르는 한쪽 숲속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희희덕거리며 노루 멱통에 막대기를 찔러넣어 피를 받아먹고, 어떤 자는 궁기를 참기 어려웠던지 사냥한 사슴의 배를 갈라 간을 빼먹고 있었다. 그의 입가장자리는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악명 높은 아골타의 후예들입니다.”
“아골타?”
“네. 아골타는 북만주 안출호에서 태어난 불세출의 영웅입지요. 언제나 싸움터에서 용맹을 떨쳤고, 재능이 있는데다 계책 또한 여우같았습니다. 그 부족이 요나라 말대 황제 천조제와 싸우는 과정에서 일부가 파괴되어 백산으로 숨어들어와 수렵으로 살고 있소이다. 누대에 걸치니 산적이 직업이 된 무리입니다. 이들은 거란 귀족의 노역과 수탈을 벗어나 독자적인 생활을 하는 바, 그만큼 기질이 거칠고 난폭합니다.”
김말대가 나섰다.
“저 자들의 용맹을 모르고 다이샨 패륵이 나섰다가 생포된 것입니다.”
“알았다. 지금부터 매복전에 들어간다. 포로자가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인즉, 그럴려면 기습전이다. 한 순간에 제압한다. 나를 따르라.”
정충신은 날렵한 군졸 넷을 두 개 조로 나누어 따라붙게 하고 시라소니처럼 송림 사이를 소리없이 숨어들어갔다. 십 보 정도까지 접근하자 산적들의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개털모자를 쓰고, 호피 옷을 입은 자가 두목이었다. 두목을 생포하면 다른 것들 제압은 문제없을 것이었다. 정충신이 한 순간 맹수처럼 뛰어들어 두목을 끌어안고 그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꼼짝마라!”
두 개 조의 전투원들이 어느새 정충신의 곁에 와 서서 칼을 빼든 채 주위를 훑듯이 노려보았다. 최명길과 다른 전투원들이 뒤따라 달려들어 잔당들에게 삼지창과 검을 겨누었다.
“납치해간 자, 어디에 두었나?”
그러자 두목이 정충신이 겨눈 칼을 한 손으로 와락 제치더니 그 길로 송림 속으로 도망쳤다.
“처치하라!”
정충신이 두목을 뒤쫓으며 군사들에게 명령했다. 군사들이 잔당들을 칼과 삼지창으로 처치했다. 정충신이 도망가는 두목을 겨누어 활을 쏘았다. 대번에 그가 고꾸라졌다. 달려들어 일격에 그의 두상을 갈기고, 칼등으로 어깨를 내려치니 그가 개구리처럼 쭉 뻗었다. 다른 전투원이 달려들어 칼로 그의 숨통을 끊으려 하자 정충신이 가로막았다.
“죽이지 마라. 이 자는 살려야 한다.”
그리고 두목의 멱살을 잡아 흔들며 물었다.
“다이샨, 어디 있나?”
“산변(山邊)을 지나 강외를 건넜다.”
“강외라니?”
“두만강이다.”
정충신이 군졸들에게 명령했다.
“이 자를 묶고 앞세워서 강을 건넌다. 반항하면 죽여라!”
정충신은 적정을 살피도록 탐망선을 먼저 보내고, 강기슭 포(浦)에 이르러 조를 새로 편성했다. 이 광경을 최명길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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