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령봉에 서니 내장산 8개 연봉들 안개 속에서 손짓

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14)‘개운치-추령’ 구간(2019. 2. 23.)
추령봉에 서니 내장산 8개 연봉들 안개 속에서 손짓
울창한 대밭 사이로 정맥길…먼 거리 망대봉이 눈앞에
봉우리엔 군사시설 들어서 ‘사진도 찍지 말라’ 경고판
평탄한 길 산보하는 기분으로 걷다보니 어느새 ‘여시목’
친구가 삶아온 유정란 맛 일품…내장산 구간 기대속 하산
 

추령봉 오르는 길에 조망지점에서 바라본 내장산 8개 연봉. 안개 속에서 어서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미세먼지에 가려 능선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선경임에 틀림없다.
개운치를 출발해 헬기장 있는 봉우리서 만난 망대봉. 정상에 군사시설이 있어 사진 촬영도 금지된다.
복룡재 정상 근처의 산죽.
호남정맥길을 동행한 친구 겸신.
추령봉 정상에 선 필자.
개운치에서 추령봉까지 이동한 구간을 나타낸 트랭글.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는 개운치에서 내장산 입구에 있는 추령까지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치과치료를 받느라 조금 늦은 시각인 9시 40분에 겸신 친구를 차에 태워 개운치로 향했다. 내장산으로 통하는 부전 사거리에서 새로 난 개운치 터널 방향으로 2∼3km 가다가 오른쪽에 부전 저수지를 끼고 운암, 백석마을 쪽으로 내려가야 개운치에 닿을 수 있다. 잘못해서 개운치 터널을 통과해 버리면 수십 킬로를 우회해야 하니 차량을 가지고 갈 때에는 위 지점에서 조심해야 한다.
11시쯤 개운치에 닿아 산행 기점을 살피는데 특이하게 울창한 대밭 사이로 정맥 길이 나 있다. 15분쯤 산행을 하니 헬기장이 있는 481봉에 닿는다. 481봉에서 물 한잔을 마시고 둘러보니 큰 통신탑이 멀리서도 눈에 띄는 망대봉이 눈앞에 보인다. 망대봉까지는 약 20분 거리인데, 막상 망대봉에는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어서 사진도 찍지 말라고 경고표지판이 붙어 있다. 게다가 철조망까지 쳐져 있어서 망대봉 허리 쪽으로 난 우회도로로 산행을 해야 한다. 다행히 트랭글에서는 배지를 주는데 망대봉 통과시각은 11시 36분이다.
망대봉에서 군부대 진입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포장이 된 임도가 계속되는데, 희한하게 바로 보이는 봉우리가 아니라 위 임도를 따라 1km가 넘게 정맥 길이 이어진다. 길가에 있던 어떤 아저씨가 “이 길이 처음이요”라고 물으며 임도를 따라가라고 안내해 준다. 워낙 길이 좋고 기온도 15도까지 올라가는 통에 장갑과 버프도 벗어 던지고, 동계용 등산복 하나만 걸치고 걷는데 전혀 춥지 않다. 지난주에 고당산에서 눈을 맞으며 산행하던 것이 꿈만 같다.
15분 쯤 후에 임도는 끝나고 두들재에서 다시 정맥 길이 시작된다. 오늘의 산행에서는 망대봉이 550m로 제일 높기 때문에, 두들재 위의 414봉도 숨 한번 크게 쉬면 금방 정상에 닿는다. 414봉 다음의 470봉은 편편한 봉우리가 길게 이어져 어디가 정상인지도 알 수 없을 절도로 완만하다.
20여분을 산보하는 기분으로 걸으니 467봉이 나오는데 정맥 길은 그나마 위 467봉 옆구리를 돌아 바로 여시목으로 닿는다. 여시목은 표준말로 하면 ‘여우목’이다. 노루가 잘 나타나는 곳이면 ‘노루목’이니 여시목에는 옛날에 여우가 살았나 보다. 어릴 때 어른들이 교활한 사람을 가리켜 “백여시 둔갑한 놈”이라고 욕을 하곤 했었다. 여시목에는 고가를 헌 목재들이 쌓여 있는데, 원래 집터에는 새로 전원주택을 지으려고 하는지 터를 닦아 시멘트로 포장해 놓았다.
여시목에서 바로 보이는 506봉까지는 지금까지의 코스와는 달리 꽤나 힘이 든다. 1시경 506봉에 닿아 편편한 낙엽 위에 자리를 잡아 점심을 먹었다. 겸신 친구는 고향에서 닭을 키우는 친구동생인 정정기씨가 공급하는 유정란을 여러 개 삶아 왔는데, 크기는 조그마하나 맛이 고소한 것이 일품이다. 정정기씨는 농약 친 풀도 닭에게 먹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친환경으로 닭을 키우고 있다니 훌륭한 일이다.
사실 제초제는 월남전에서 쓰던 고엽제를 농사용으로 개량한 것이니 우리나라처럼 작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에서는 써서는 안되는 화학물질에 다름없다. 한번 제초제를 뿌리면 10년 동안 땅에 있는 이로운 세균들이 살지 못한다나. 가끔 고향에 가는데 봄이면 제일 먼저 찾아와 지저귀던 제비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살충제와 제초제 때문에 먹이가 되는 곤충이 없으니 안 오는 것 같다. 벌과 나비는 물론 제비마저 살 수 없게 만들어 버린 인간의 어리석음에 한탄이 나온다. 어릴 적 봄이면 논둑에 무성히 피어난 냉이꽃밭에 노랑나비, 하양나비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날아다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다시 길을 나서니 멀리 두 개의 봉우리가 눈에 들어오는데 왼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530봉이고, 오른쪽에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추령봉임이 확실하다.
434봉과 430봉을 넘어 복룡재까지는 완만한 능선이 이어지다가 복룡재에 이르러 530봉이 상당한 높이를 자랑하며 솟아 있다. 2시 10분경 530봉에 닿았는데 정상 근처에는 산죽 숲이 평화롭다.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이마에서 땀이 솟는다. 530봉에서 능선을 따라 추령봉은 10분이면 닿는데 정맥 길은 추령봉 옆으로 우회해 간다. 갈림길에 배낭을 벗어놓고 친구와 함께 추령봉에 오르는데 바위로 된 조망지점이 나타나 가보니 내장산 8개 연봉이 안개 속에서 손짓한다. 미세먼지가 아니면 선경이 틀림없는데, 다음 주의 산행이 기대된다.
오후 2시 40분쯤 추령봉 꼭대기에 올라 인증사진을 찍고 서둘러 하산을 시작하였다. 추령봉에서 추령까지는 30분이 안 걸렸다. 추령에는 전북산림박물관이 있고 마을도 하나 있어서 고개치고는 번화하다. 3시 30분경 추령에 도착하니 정읍 내장산 콜택시가 1초도 안되어서 전화를 한다. 기가 막히게 서로 타이밍이 맞았다. 추령에서 산행기점인 개운치까지는 택시비 4만원을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에서도 바로 근처에 있는 순창 복흥면 택시를 불러야 한다. 개운치 구간에서 오정자재 구간까지는 순창 복흥면에 있는 택시를 부르는 게 제일 가격이 싸다. 지난번에 이용한 택시기사님의 말을 들었다가 큰 손해를 입은 셈이나, 시행착오는 인생에서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다른 분들이 참고했으면 한다. 다음 주는 드디어 내장산 구간을 지나게 되니 마음이 설렌다. /글·사진=강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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