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광해시대 1장 역사 청산 <323>

“정충신 첨사, 잘 왔소. 내가 그대를 데려오도록 손을 썼소.”
포이포 진지(陣地)에 이르러 부임 신고를 하자 오윤겸이 인사를 받으며 말했다. 그는 통신사로서 사행(使行) 준비차 미리 부산진에 내려와 있었다. 정충신은 여러가지로 궁금해서 물었다.
“왜 저 먼 북방에 있는 저를 여기까지 끌어내셨습니까.”
“그걸 몰랐단 말인가?”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떤 누구도 배속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직업군인인지라 명령받은 곳이 제가 있을 곳이라 여기고 따랐을 뿐입니다.”
“그럴 것이야. 비밀리에 진행한 일이니 말이오. 내가 정 첨사를 포이포 첨사로 배속시킨 것은 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지. 왜어(倭語)를 잘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이렸다?”
그것 때문에 나를 불렀다? 의아스러워서 정충신은 대답 대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소문에 따르면 전쟁터에서 중국군을 다스리면서 중국말을 완벽하게 익히고, 왜군들을 상대하면서 왜어를 충실히 익혔다는 말을 들었소. 하면, 어려움없이 통변할 것이렸다?”
“어려윰은 없을 것입니다. 한때 항왜(降倭)들을 부리기도 했으니까요.”
항왜들은 일본군의 거친 기합과 차별, 병참선이 차단되어 먹을 것이 없어서 며칠씩 굶주리는 것에 대한 불만을 품고 도망나온 일본 군사들이었다. 그들은 이괄 부대에도 배치되었지만 일부는 험지인 정충신 부대에도 배치되었다.
“일본땅이라 하더라도 때로 중국인과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니, 양국 말을 익힌 군관을 찾던 중이었소.”
그래서 삼천리나 떨어진 그를 불러들인 모양이었다.
“그러면 일본국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당연히 교섭과 협상을 진행하겠지만 구체적인 협상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같았다.
“외교는 전쟁의 연장이오. 소리없는 싸움이오. 언어로써 적을 격파하는 것이오. 논박은 논박으로, 주장은 주장으로 치고 받아야 하는 것인즉, 정 첨사에게 맡겨진 역할이 막중하오.”
“그러면 일본에 끌려간 포로들을 되돌려 받을 협상을 진행하는 것입니까.”
“맞소. 어떻게 그것을 알았는가?”
“그야 전쟁이 끝난 마당인데 전후 처리를 해야지요. 왜국에 끌려간 우리 군관과 백성들을 송환해야 할 일이 남았지요.”
“잘 보았네. 하지만 송환이 쉽지가 않아. 그냥 돌려줄 리는 만무하고, 몸값을 부를 것이오. 그래서 묘안을 짜냈는데, 우리에게 투항한 항왜들을 돌려보내려고, 대신 우리 포로자들을 돌려받으려 하고 있지. 항왜 숫자가 자그마치 2만을 헤아리니 그들을 돌려주고 그만큼의 숫자를 되돌려 받는 것이오.”
“그렇게는 못합니다. 절대로 그건 안됩니다!”
정충신이 단박에 거칠게 거부했다. 오윤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일개 진을 지키는 첨사가 중양 요로의 중책을 맡은 권신(權臣)의 의견을 일거에 거부하다니,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오윤겸은 첨지중추부사가 되어 회답 겸 쇄환사(回答 兼 刷還使)의 정사로 사행 400명을 이끌고 일본에 가는데, 한마디로 관록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일찍이 부수찬(副修撰)·이조좌랑·지제교(知製敎)·부교리(副校理)를 역임하고, 안주목사·동래부사 등의 외직을 맡았으며, 북도순안어사(北道巡按御史), 우부승지·좌부승지를 지낸 인물이었다.
“안된다니? 왜놈이라면 치가 떨리는데 그들과 더불어 살게 놔두자고?”
오윤겸이 언성을 높였다.
“그것이 아닙니다. 항왜들을 돌려주겠다고 하시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건 신의의 문제입니다. 항왜들은 배신자 낙인이 찍혀서 본국에 송환되면 모두 칼을 맞습니다. 그들이 죽을 것을 빤히 아는데 끌려가겠습니까? 가다가 모두 바다에 빠져 죽거나, 아니면 배 타기 전에 산속으로 도망가 반란을 모의하고, 필시 도적떼가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이 눈에 훤히 보이는데 사지로 돌려보낸다고요? 그들이 조선국에 대한 배신감을 복수전으로 펼 적시면 또다시 국내 정정이 불안해집니다. 어느때는 이용해먹고, 어느때는 용도페기한다면 누가 그런 토사구팽을 수용하겠습니까. 단연코 그들이 조정을 향해 칼을 겨눌 것입니다.”
“음...”
오윤검이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대의 말이 과연 맞다. 나이 육십을 넘기니 생각도 흐미해지고, 내 위주로 사물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면, 어떤 방법으로 그들을 데려온단 말인가. 왜국은 분명 포로 값을 요구할텐데 말일세.”
오윤겸은 좋은 대안 하나가 사라지니 답답한 모양이었다.
“제가 생각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관록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번뜩이는 지혜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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