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어벤져스’
임성화(광주 서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 소장)

20여년 전,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시험이 끝나는 날은 극장에서 개봉중인 영화 한편을 보여주곤 했다. 20여차례 영화를 보았지만, 어떤 영화를 누구와 보았는지, 사실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쉽게 그 당시의 정경과 분위기, 친구들과 함께했던 좋았던 느낌만 기억날 뿐이다.

기억력이 다소 약한 필자가 주인공과 스토리까지 기억하는 영화가 한편이 있다. 바로 이문열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해 1992년 개봉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영화의 주 내용은 1950년말, 어느 시골 한 초등학교 5학년 2반에서 펼쳐지는 초등학교 꼬마들의 기 싸움 정도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았고, 지금 우리에게 주는 함의 또한 적지 않다.

영화는 서울에서 공부 잘하고, 집안 괜찮은 한병태라는 학생이 전학오면서 시작된다. 전학 온 한병태 그리고 구질서의 상징 엄석대(홍경인 출연)와의 관계 형성에서 모든 스토리가 전개된다. 엄석대는 5-2반의 급장(반장)으로 절대 권력자로 그려진다. 반 아이들은 그 규칙을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순응하면서 생활하지만, 전학 온 한병태는 그 구질서의 규칙을 인정하지 않고 대항한다. 6학년이 되자, 새로운 담임(최민식)을 만나게 되고, 새 질서를 지향하는 최민식에 의해서 견고하게만 느껴지던 구질서의 ‘엄석대 왕국’은 점차 붕괴되어 간다.

‘엄석대’라는 영향력 있는 한 영웅의 힘과 권력, 그리고 몰락은 2019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씁쓸하게도 여전히 유효하며, 목격되고 있다. 영웅의 몰락이 특히 우리 청소년들과 연관되어진다면, 그 파급력과 사회적 비용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크고 무섭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이 시기에 대개 자신만의 영웅을 만들고 그를 따르고자 한다. 이들에게 영웅은 자신이 본받고 닮아가고 싶은 인물이거나 현실에서 자신이 이루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대신 해소해 줄 인물이기도 하다.

대학입시문제가 학교교육의 가장 목표인 것처럼 치열하게 내몰리는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 이런 영웅은 그 존재가 더욱 절실하다. 요즘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최대 영웅은 단연 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들은 연예인들의 옷차림을 따라하고, 그들을 쫓아다닌다. 최근 한 청소년은 자신이 평소 좋아하는 연예인의 일탈로 큰 충격을 받고, 현재 일상적인 학교 생활마저 힘들어하고 있다. 무작정 삶의 경계가 무너질만큼 ‘왜 그 연예인을 우상화했냐, 좋아했냐’며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연예인’. 연기나 노래, 춤 등의 연예 활동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대중에게 영향력을 끼치려 하고, 대중이 반응하는 정도에 따라 ‘연예인으로서의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은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려 노력한다. 이에 마음이 움직인 대중들은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지고 영향을 받는다. 매일 주요 포털 검색어 상위 순위에서 ‘연예인 이름’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대중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산하는 연예인의 경우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기여하지만, 정반대의 경우 그 부정적 영향력과 사회적 학습력은 크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연예인 성폭력’, ‘마약’의 문제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고, 우리사회는 매우 심각한 상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작년 11월 말 클럽 버닝썬 폭행 사건에서 촉발된 연예계와 유흥가의 게이트에 많은 우리들의 ‘영웅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들의 영웅은 어디갔는가? 가르치려는 사람의 수는 늘어나지만, 따를만하고, 따르고 싶은 스승, 즉 영웅 찾기가 힘든 시대에 놓여있는 우리. 영웅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상담하는 많은 청소년들의 고민의 저 밑바닥에는 결국 따를만한 ‘영웅의 부재’로 귀결된다. 사람 인(人)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서있는 형국의 모양이다. 사람은 결국 사람에게 영향받는다. 좋은 사람은 좋은 영향을, 부정적인 사람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건강한 사람은 반드시 건강한 작은 영웅들이 주위에 있었다. 화려하거나 거창하진 않아도, 앞모습과 보이지 않는 뒷모습을 일치시켜가는 우리 시대 영웅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 당신 그리고 우리가 영웅이다. 아니 영웅이어야 한다!

며칠 전 개봉한 ‘어벤져스’라는 영화가 유례없이 흥행 중이다. 모두가 열광하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극장 스크린도 좋지만,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만나고, 또 경험하고 싶다. 분명 어디에선가 시작되고 있을 또 다른 작은 영웅들의 탄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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