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현장>대기오염 조작과 미필적 고의
최연수(동부권취재본부 차장대우)

최근 전국을 뒤흔든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대기업의 대기오염배출 조작 사건에 대해 해당 기업들은 일단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일단 사과를 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일부 업체의 대응을 보면 그 기저에는 자신들이 관여하거나 묵인한 바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더 나아가 배출측정업체가 자발적으로 수치를 조작했기 때문에 수사를 통해 이러한 내용을 밝혀내겠다고 자신감까지 보이고 있다.

속된 말로 하청업체나 다름없는 배출측정업체가 ‘알아서 긴 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태에 대한 책임이 없으며 알았으면 책임 있는 조치를 했을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큰 사건이 터지면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 넘기는 대기업들의 이중적인 행태를 보는 것은 오늘 어제 일이 아니다. 솔직히 이제는 대기업의 위기대응 매뉴얼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정말 국내 재계순위 열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이 자신들이 배출하는 대기오염물질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몰랐을까?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기업들은 측정업체를 100% 신뢰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측정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말하진 않아도 서로간의 편의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심도 든다.

미필적 고의. 행위자가 범죄 사실의 발생을 적극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기의 행위가 어떤 범죄 결과의 발생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하는 의식이다.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기업들을 보고 있노라면 미필적 고의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몰랐다고 항변은 하고 있지만 이들에게도 이러한 고의는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대기오염물질 배출업체가 측정업체를 선정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이상한 구조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리고 김영록 전남도지사의 주재로 열린 현장긴급회의에서도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따라서 아마도 제도적인 개선이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업이 배출수치의 조작을 직접 지시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의도하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살펴야 할 것이다. 또한 미필적 고의의 정황이 발견된다면 이에 따른 도의적 책임이 아닌 분명한 법적 책임도 마땅히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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