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야 살아남는다
유근기(전남 곡성군수)

유근기 곡성군수

국민을 위해 눈높이를 ‘맞춘다’라는 말이 눈을 ‘낮춘다’라는 의미로 쓰일 때가 있었다. 고결한 정부기관이나 관리들이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뭐라도 하나 요청을 들어주겠다는 선민의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강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시대가 급변했다. 어느새 국민들은 저만치 높은 곳에 올라섰고, 지금의 관료 사회는 대중의 눈높이를 감당하기 버겁다. 이제 눈높이를 ‘맞춘다’는 말은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게 행정조직의 역량을 ‘높인다’라는 뜻이 되었다. 그래서 최근 중앙정부에서 고심해서 만든 정책도 ‘국민 눈높이’라는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물거품이 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후기 정보화 시대에 지자체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과거에는 머리끈을 싸매고 이구동성 근면과 성실을 외치며 뭐든 열심히만 하면 됐다. 이제는 열심히만 하다보면 복잡한 미로에서 길을 잃기 쉽다. 정보와 선택지가 넘치는 지금은 방향을 잡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최선의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의사결정 구조’와 관련이 깊다. 과거에는 중요한 문제일수록 소위 철인과도 같은 통치자가 모든 의사를 결정했다. 대중 민주주의가 실현된 현대 사회에서도 소수의 엘리트들은 역할은 중요하다. 그들은 기술발전을 선도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하는 것은 기술이나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윤리와 가치관의 문제이다.

윤리와 가치관은 다수가 공유하는 상식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의사결정은 개인이나 소수가 아닌 공동체의 상식에 따라야 하고, 건강한 상식을 가진 공동체일수록 최선의 선택을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공동체는 지역적 범위, 성별, 연령, 기능, 관심사 등에 따라 다양하게 조직된다. 한 사람이 여러 공동체에 속하기도 하고, 하나의 문제에 대해 다른 입장을 가진 여러 공동체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 군에는 청년 정책 발굴을 위한 청년파트너, 문화를 공유하고 재능을 판매하는 뚝방마켓 협동조합, 곡성의 숨은 속살을 안내하는 관광택시 등 다양한 공동체 생태계가 있다. 그리고 각각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이 작은 공동체들은 서로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곡성이라는 큰 공동체를 이끌어 간다.

곡성군이라는 행정조직은 곡성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공동체들이 지속가능하고 상생할 수 있도록 돕는 균형자 역할을 한다.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공동체이기도 하다. 따라서 균형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대 변화에 맞춰 곡성군이라는 조직도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 ‘조직을 혁신’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가치를 가장 빨리 이끌어낼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민선 7기 들어 우리 군은 한 차례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조직 개편이란 간판만 바꿔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조직 개편에는 우리 군이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이 녹아있다.

먼저 OK민원팀을 신설해 과거 복잡했던 건축 민원을 접수부터 해결까지 한 곳에서 가능하게 했다. 간단한 개편사항이지만 그 안에는 중요한 가치의 변화가 담겨있다. 바로 행정의 관점 변화다. 그동안 제공자 편의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행정을 수요자인 군민 편의 중심으로 바꾼 것이다. 앞으로도 조직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 변화할 것이다.

새롭게 생긴 ‘미래혁신과’는 우리 군을 이끌어 갈 혁신 정책을 발굴하고, 인구, 교육 등 핵심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서 군민행복이라는 백년대계를 향해 방향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나아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담았다.

관광문화과는 관광과와 문화체육과로 분리했다. 유행에 민감한 관광 트렌드에 빠르게 반응하면서도 변치 않는 우리 군 고유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양 극단의 요구에 전문성 있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또한 ‘군민행복 지수 1위’라는 군정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소득과 같은 양적 개선 못지않게 군민들의 정신적 고양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문화 분야를 강화하고자 함도 있었다.

수시로 이루어지는 조직개편과 더불어 조직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조직문화’라는 체질 개선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공직 내부의 ‘조직문화’가 군민의 행복과도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최근 공직사회에도 그 유명한(?) 90년대생들이 많이 들어왔다. 어린 시절부터 민주주의의 세례를 받았고,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이 자란 세대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지만 먼 미래의 야망보다는 눈 앞의 ‘소확행’을 즐긴다. 강압적인 요구에 권리를 잃으려 하지 않고, 전체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해도 앞으로 공직을 비롯한 우리 사회 전체의 모습은 90대생들이 그리는 대로 흘러갈 것이다. 공직사회도 무작정 이들이 기존의 틀에 적응하기만을 바라는 것은 곤란하다. 그들에 맞춰 조직이 변화해야 할 필요도 있다. 적절한 참여기회를 제공해 그들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그들이 권리를 지켜가며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직 첫 걸음 뗀 수준이지만 우리 군은 건강한 조직문화를 위해 하나둘 체계를 갖춰가고 있다. 직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 수요일에만 시행하던 가정의 날을 금요일까지 확대했다. 또한 매주 월요일에 있는 아침 간부 회의시간을 8시 30분에서 8시 50분으로 늦춰 조직 전반의 워라밸 상승을 유도하고 있다. 신규자들의 업무 및 대인관계 적응을 위해 선배 공무원과 신규 공무원 간의 멘토-멘티 제도를 운영한다. 대부분 OffJT(off-the-job training) 방식으로 이루어지던 신규자 교육에 OJT(on the job training)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의사결정 구조, 조직 혁신, 조직 문화 개선 등 시스템에 대해 논할 때마다 항상 조심스러운 것이 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는 것이다. 관료제도 한때는 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위한 최고의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비효율과 권위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의 중심은 ‘시스템’이 아니라 ‘변화’다. 행정서비스도 변해야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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