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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광해시대 1장 역사 청산 <332>

광해는 세자 시절 도성을 버리고 도망간 아버지를 대신해 왜군에 맞서 나라를 돌보고, 분조를 이끌었다. 전국을 돌며 군사들을 독려하고, 군량과 병기들을 조달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자세보다는 일신의 보신에 급급했던 아비의 찌질한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백성들은 이런 세자를 적극 지지하고 따랐다.

그러나 그것이 아버지 선조로부터 미움을 받는 이유가 되었다. 자식이 잘하면 내 일처럼 기쁘고 즐겁거늘, 반대로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 화근이 되었다. 질투심과 의심병이 많은 아버지는 세자의 행동거지를 보며 여차하면 세자 직분을 박탈해버릴 심산이었다. 때마침 그는 젊은 왕비 인목왕후로부터 아들 영창대군을 보았다. 그의 나이 55세에 갓 스물한살의 젊은 왕비 인목왕후로부터 아들 영창대군을 얻으니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결점을 보완해줄 정통 왕자가 태어난 것이 기뻤다.

선조는 왕실의 법통에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그가 조선왕조 중 직계가 아닌 방계로서 왕위를 계승한 첫 번째 사례였기 때문이다. 그는 중종의 일곱째 아들 덕흥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니 태어나는 순간 왕이 될 운명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정실 부인에게서 태어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후궁의 장자로라도 태어나야 하는데 세 번째 후궁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니 왕위 계승의 꿈을 꾸는 것조차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어찌 선왕 명종 비의 눈에 들어 왕위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왕의 정통성 때문에 백관들이 우습게 보는 것 같고, 그래서 말발이 안서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가 자기를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무엇을 해도 자신감이 없었다. 이런 때 세자로 봉해진 광해 역시 병약해서 일찍 죽은 후궁 공빈김씨에게서 나온 둘째 아들이었다. 공빈김씨가 색기가 있는 매력녀라면 그 어미를 생각해서라도 왕위 승계를 인정할 수 있는데 그런 것도 아니니 이래저래 내내 마땅찮게 여기고 있었다. 한번 미운 놈은 영원히 미워하는 것이 지배자의 고약한 습성이다. 그런 오만이 우습게도 권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때에 영창이란 왕자가 태어났다. 그것도 아리따운 어린 왕후한테서 태어났다. 선조는 이제 됐다, 하고 쾌재를 불렀다. 광해를 내치고 영창대군에게 왕권을 물려줄 기회가 온 것이다.

어느날 광해가 어전에 이르러 “세자 문안 드리옵니다” 하고 아뢰자 왕이 “어째서 세자의 문안이라고 이르느냐. 너는 임시로 봉한 것이니 여기 오지 말라”고 쫓아버린 일이 있었다. 이 광경을 영의정 유영경, 중신 이홍로 등이 지켜보았다.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을 단박에 눈치챈 그들이 먼저 세자 교체 음모를 꾸몄다.

하지만 영창대군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 핏덩이에 지나지 않는지라 속을 태우던 중 영창대군이 만 두 살 때 선조는 58세를 일기로 죽고 말았다. 온갖 박해와 모멸을 한 몸에 받았던 광해가 마침내 왕권을 쥐었다.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니 꼭 칼날 위를 걸어온 것같이 아슬아슬했다. 영창의 어미 인목왕후, 그의 친정 식구들, 그리고 눈치로 때리는 중신들... 그들의 행위를 보면 피를 보아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어느새 복수는 나의 힘이 되었다.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분조를 이끌며 건져낸 업적만으로도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리분간 못하는 왕의 말을 따라 자신을 제거하려고 했던 자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광해는 뽄대있게 유영경 이홍로 일당을 제거해버렸다. 인목왕후의 친정아버지 연흥부원군 김제남도 반란 수괴라는 이름으로 처형했다. 김제남은 실제로 자신의 외손자 영창대군을 세자로 추대하려고 세를 모았던 사람이다.

서인과 북인, 북인 중에서도 소북과 대북 사이에 벌어진 정치적 이념갈등, 붕당의 소용돌이, 계축옥사 등 모함과 배신과 음모의 정정(政情)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광해는 ‘복수혈전‘에 목을 걸고 있었다. 이런저런 암투를 지켜본 정충신은 환멸이 느껴졌다. 왕이 위태로워보였다.

“전하, 이에야스가 참으로 기특하옵니다. 처음엔 사나운 싸움꾼이었으나 연륜이 차니 원만해지고 너그러워지면서 정사도 안정되게 꾸려가고 있습니다. 한때의 정적도 포용하고 있나이다. 나를 배신한 자를 용서하니 더 큰 힘을 얻고 있나이다.”

어찌 보면 광해는 이에야스의 인생경로와 비슷했다. 고난을 겪고, 오랜 기간 모멸을 참은 것이 그랬다. 그러나 사후 관리가 완전히 달랐다. 이에야스는 초기 거친 성품에다가 싸움질을 좋아했으나 노후 들어서 얼굴이나 몸집이 두툼해져 덕스럽게 변모하면서 정사도 덕으로써 행했다(강항의 ‘건거록’). 그런데 광해는 이와 반대다. 정충신은 그게 두려웠다.

“전하, 미개한 것들의 것이라도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합니다.”

“너는 반성과 용서라는 개념을 아느냐? 강자가 된 사람 앞에서 잘못했다고 비는 것은 아첨이나 가식이다. 일신의 보신을 위해 취하는 위장된 모습이다. 책임 대신 목숨을 구걸하는 자는 그래서 목을 베야 하는 것이다. 군자의 체통도, 나라의 권위도 밟는 짓이니 말이다. 용서도 마찬가지다. 용서할 아량이 없다면 나쁜 사람이지만, 개인의 잘못이든, 시대가 만든 잘못이든 그로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그래도 좋은 게 좋다고 그냥 넘어가자고? 그러면 우주의 질서가 제대로 서겠느냐.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거리를 활보한다면 세상은 악인의 세상이 되어도 된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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