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가는 5·18 정신…전남 5·18 사적지 관리 부실

시민군 무장 도왔던 나주 영강파출소 등 잡초 빼곡

76곳 중 상당수 방치 …보존 법적 근거 마련 ‘시급’

전남지역 5·18 사적지들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어 관리·보존 대책이 시급한 실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16일 오전 5·18 당시 시민군을 무장시키기 위해 나주시민들이 칼빈소총 등을 탈취했던 영강파출소 내부의 모습. 중·서부취재본부/정다움 기자 jdu@namdonews.com
“이곳도 광주 금남로 못지않게 39년 전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현장인데 지금은 이 모양 이 꼴이어서 지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16일 오전 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을 이틀 앞두고 전남지역 5·18 사적지중 하나인 나주시 삼영동 구 영강파출소 앞에서 만난 이금택(71) 할머니는 방치된 5·18 사적지를 보며 혀를 찼다.

이날 오전 찾은 영강파출소는 슬레이트와 뜯어진 장판이 한켠에 쌓여 있었다. 고장난 지 한참은 지나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내부엔 담배꽁초와 먹다 버린 음료캔, 술병 등이 발에 밟힐 듯 나뒹굴었다. 사람 손길이 닿은 지 오래인 듯 천장과 벽면 곳곳 곰팡이도 눈에 띄었다.

영강파출소는 5·18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접한 나주시민들이 시민군을 돕기 위해 200여정의 칼빈소총과 다수의 수류탄을 탈취했던 곳이다. 나주시민들로부터 무기를 전달받은 시민군은 장갑차와 헬기를 앞세운 계엄군에 맞서 그나마 전남도청을 일정 기간 사수할 수 있었다. 민주화를 위해 신군부와 맞서 싸운 광주시민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적 장소인 셈이다. 전남도도 이런 역사적 의미를 인정해 1998년 영강파출소 무기고를 5·18 사적지로 지정했다.

영강파출소와 함께 나주시민들이 시민군의 무장을 위해 소총 등을 탈취했던 금성파출소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 찾은 금성파출소 집중무기고는 성인 남성의 키를 뛰어넘는 풀이 무성히 자라 사적지를 확인할 수도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이곳 역시 사적지 한 편에 방치된 쓰레기가 함께 놓여 있었다.

하지만 나주시는 이곳을 관리·보존할 법적 근거가 없고 관리 주체도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실상 방치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이곳뿐만 아니라 전남 곳곳에 위치한 5·18 사적지 상당수가 비슷한 처지라는 점이다.

전남도에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 역사 현장 기념물이 목포시와 나주시 등 8개 시·군에 표지석 55곳, 안내판 21곳 등 모두 76곳이 산재해 있다. 지역별로는 목포 15곳, 화순 13곳, 나주 11곳, 해남·영암·함평 각각 8곳, 강진 7곳, 무안 6곳 등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5·18 관련 전남지역 사적지들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고, 광주시민과 함께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전남지역 역사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우승희 전남도의원은 “광주의 경우 시 차원에서 5·18 사적지를 일괄 지정·제작한 반면 전남도는 각 시·군별로 따로 제작해 형태도 관리 주체도 가지각색이다”며 “5·18 민주화운동이 광주의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전남 지역 5·18 사적지를 재정비하고 보존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중·서부취재본부/정다움 기자 jdu@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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