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 마지막 방송 박영순씨

제39주년 기념식서 활동사 ‘재조명’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당시 가두방송을 담당했던 박영순씨의 손을 꼭잡고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애절한 목소리로 마지막 방송을 진행했던 박영순(61·여)씨의 이야기가 18일 제39주년 기념식에서 재조명됐다.

박씨는 1980년 5월 27일 오전 2시 30분 전남도청 1층 상황실 옆 방송실에서 죽음을 앞둔 시민군의 상황을 마지막까지 알린 주인공이다.

박씨는 당시 송원대학교 유아교육학과 졸업을 앞두고 광주여고와 전남여고에서 학생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쳤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박씨는 학생 한 명이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런 그녀에게 시민군이 다가와 광주 상황을 알리는 걸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박씨가 시민군을 도와 5월 21일부터 가두방송을 하게 된 동기다.

박씨는 광주민주화운동 마지막 날인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에 맞서 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송을 하다 총부리를 겨눈 채 들이닥친 계엄군에 의해 도청 방송실에서 체포됐다. 당시 박씨는 27일 오전 2시 20분부터 15분간 세 차례 방송을 했다.

마이크를 잡은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 우릴 잊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이후 계엄군에 체포된 그녀는 광주 상무대 보안실로 끌려가 두 달 넘게 모진 고문을 받았다. 재판에 넘겨진 박씨는 ‘계엄법 위반, 내란부화 수행죄’로 1년 실형 선고를 받고 6개월 복역하다 형 집행 면제로 풀려났다.

박씨는 지난 1987년이 돼서야 사면복권을 받았고 2016년엔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영창 기자 seo@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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