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행간섭과 역행간섭의 대결?
형광석(목포과학대학교 교수)

마음이 무겁다. 불편하다. 답답하다. 된장을 된똥이라고 우기는 사언행(思言行)이 어지럽다. 그것도 많이 배웠고, 자타가 인정하는 지식인이라는 사람의 행위라고 보기에는 매우 지나치다. 5월이라 더 그렇다. 참으로 우울하다. ‘우울’은 필자가 1년에 한두 번 쓸까 말까 할 정도로 삼가는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많이 배운 사람, 서울의 관악산, 신촌, 안암골 등에서 청춘기를 보냈다는 사람, 미국, 영국에서 이렇다 저렇다고 하는 대학에서 공부했다는 학자, 옛날 표현인 고관대작을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들의 일부는 선택받은 인간이라는 선민의식도 강하고, 시킴을 받기보다는 군림하면서 부리는 경험이 많은지라, 인지과정에서 순행간섭이 일어나기 힘든 인생역정을 걸어왔다. 뒤집으면, 개혁에 역행하는 역행간섭의 영향력이 큰 인생의 여정을 즐겨왔다. 그래서 해야 한다. 의심하고 의심하라.

지금은 각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세상이라 집 전화번호를 굳이 몰라도 별일이 아니다. 설사 집에 전화기를 설치했을지라도 집 전화기를 잘 활용하지는 않는다. 십 수년 전만 해도 이사를 하면 전화번호가 바뀌었다. 이사하고 나서 며칠간은 집 전화번호를 기억하려고 하면 예전 전화번호가 뇌 속에서 인출된다. 옛집 전화번호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전화번호의 기억을 방해한다. 이를 순행간섭((順行干涉; proactive interference)이라 한다. 이미 저장된 학습정보 또는 기억정보가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거나 입력하는 인지활동을 간섭한다.

한편 어떤 필요에 따라서 서너 달이 지난 후에 옛집 전화번호를 기억해내려고 하면, 언짢게도 이사한 집의 전화번호가 떠오른다. 이를 후행간섭(後行干涉; retroactive interference)이라 한다. 뒤에 학습한 정보가 앞서 학습한 정보의 인지를 방해한다는 뜻이다. 뒤에 일어난 일이 거꾸로 앞서 일어난 일의 기억을 방해하기에 ‘역행간섭’으로도 부른다.

어느 친구는 자식을 잃고 나서 1년 후 아버지가 선종하셨다. 그는 선친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이나 그 후 7년여 동안 선친을 그리는 눈물을 흘려보지 못했다고 한다. 자식을 상실한 슬픔이 선친에 대한 애도를 압도했다. 이게 바로 순행간섭의 전형이다.

2014년 4·16사변 유가족은 하루하루가 2014년 4월 16일 거다. 아무리 세상이 기쁘게 돌아가도, 우리의 소원인 남북통일이 이뤄진다고 해도 기쁨으로 여겨지지 않을 거다. 머리도 아닌 가슴에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지듯이 깊이 박힌 4·16사변은 새로운 정보의 학습이나 기억을 허용하지 않는다. 조만간 당시 생존한 학생이 백년가약을 맺는다고 하여 축하하러 결혼식장에 가면서도 그 유가족에게는 먼저 하늘나라에서 불러간 아들딸의 얼굴이 아른거리지 않을 리 없다. 결혼하지 않은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의 심정은 그 자식의 친구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만감이 교차하여 갈피를 잡기 힘들다고 한다. 순행간섭이 지대하여 역행간섭이 일어날 여지가 없다.

19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영령의 유가족과 시련을 겪은 당사자들은 일부 정치지도자들이, 많이 배운 자들이 성난 세 치 혀로 잘잘못을 가리기는커녕 윤기가 잘잘 흐르는 얼굴로 진실을 왜곡하고 비아냥거리는 언사와 행동을 용인할 리 없다. 제아무리 화려한 언사라 해도 유가족의 털끝에도 닿지 못한다.

일삼아서 일부러 점점 더 거칠게 망언을 하는 사람, 그 사람을 자기 조직에서 단죄하지 못하는 정치지도자는 역행간섭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 부류로 보인다. 그들에겐 오늘의 사적 이해관계가 어제 일어난 공적인 역사적인 진실에 대한 인식을 강력하게 역행하여 방해하는 작용을 한다. 왜 그런가? 적어도 그들은 자식을 앞세우지도 않았을 거고, 공권력이 자행한 인권침해는 피했을 거고, 국립공원처럼 제도의 틀에서 보호받았을 거다. 후행하는 일의 학습을 방해하는, 낙인처럼 새겨진 선행학습이나 선수학습이 결여된 족속이라 봐도 좋겠다.

순행이 역행을 이긴다. 순천자(順天者)는 흥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한다. 역사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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