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이계홍 역사소설 깃발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광해시대 1장 역사 청산 <341>

“모두 물러가시오!”

임금이 두 사람이 다투는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젊은 신료가 실세라는 이유로 노 대신에게 대드는 것이 볼썽사나웠다. 그래서 누구를 두둔하고, 누구를 옹호할 것없이 호통을 쳤다. 이항복을 까는 자는 필시 대북파이고, 이항복은 비주류 서인이다. 물론 서인을 자처한 적이 없고, 굳이 따지자면 무당파인데, 한번 특정 파벌에 묶이면 꼼짝없이 그 파벌에 소속되어 옹호되거나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시끄럽다면 파병 문제는 별도로 상의하겠소. 다들 물러가시오.”

왕은 중신 회의에서는 파병 안건을 상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백관들은 명에 대한 사대(事大)가 체화되어 있다. 중국이 하는 일은 모두 옳고 위대하며, 그러니 속국으로서 당연히 따라야 한다. 명 황제나 신료들이 부도덕한 인격파탄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추앙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부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배고픈 이웃의 고통은 몰라도, 중국 황실의 움직임은 명경(明鏡) 보듯 꿰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황궁 내시에게 온갖 패물과 비단 옷감을 갖다 바치며 연을 대려 한다. 그것도 사대부 중 출입깨나 하는 자에게만 부여된 특권이다. 대국의 힘을 빌려 한 자리 확보하려는 기회도 누구나 얻는 것이 아닌 것이다. 중국의 입김이 작용하면 두 계단, 세 계단 뛰어넘어 입신양명하게 되니, 중국과의 관계는 바로 출세의 척도가 된다. 그러니 혼도 쓸개도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선조 임금마저 명이 아니었으면 임진왜란 때 나라가 거덜났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인데, 북쪽 오랑캐 누르하치를 격퇴하기 위해 명황제가 조선군 파병을 요청했으니 2만이 아니라 20만을 보내도 부족하다고 방방 뜰 정도다. 이런 때 늙은 것이 재고해보자고 요망을 떤다. 그래서 실세의 힘을 믿고 입에 거품을 물고 조질 수밖에 없다.

광해의 입장에서 볼 때, 이항복이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현명한 현실주의자라는 인식이 들었다. 그것은 광해가 생각하는 바와 다르지 않았다. 나이 들면 누구 말마따나 정신이 퇴색하고, 보수적이고 편벽된다고 하는데, 백사는 미래를 보는 예지력과 통찰력을 갖고 있다. 지혜와 경륜과 관록이 거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늙으면 뒈져야 한다는 건 수정되어야 한다. 사람 나름인 것이다. 왕은 별실로 자리를 옮겨 이항복과 마주앉았다.

“대감의 뜻을 얘기해보시오.”

“전하, 정충신 군관이 변경에 있었으니 후금의 동태를 알 것입니다. 그를 데리고 왔습니다.”

“입궐했다면 들어오게 하시오.”

잠시 후 궁 내시의 안내로 정충신이 별실로 들어섰다. 백사가 뒤에 앉도록 하고 말했다.

“전하, 나라가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큰소리쳐서 오랑캐들의 노여움을 도발하여 침략을 부르고, 그로인해 종묘와 사직이 또다시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또한 백성이 도탄에 빠진다면, 그 허물이 의를 쫓는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이까. 의보다는 나라가 처한 현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로서는 군신 상하가 모든 일에 힘써 군사 증강에 정성을 쏟고 명장(名將)을 뽑아 쓰고, 백성의 걱정을 덜어주어 민심을 기쁘게 하여야 합니다. 병기를 조련하고 성지(城地)를 수리하여 나라를 견고하게 다져야 합니다. 왜국도 풍신수길이가 죽고, 덕천가강이란 자가 내치에 치중한다 하니 우리 또한 그와 같습니다. 그들이 칼을 던져버렸다고 히니 우리는 그만큼 시간을 번 것입니다.”

“우리 또한 나라 안을 다지자 그 말이군. 그러면 파병은 안해도 되는가.”

“정충신 군관을 변경에 파견하는 것이 옳을 듯 하옵니다.”

“내 곁을 지키라고 공궐위장으로 임명하지 않았던가. 일본 통신사절을 다녀와서 왜국의 변화를 과인에게 소상히 보고하였는데, 그것을 토대로 과인이 정국 진단을 하고 있는 중이오.”

광해는 나라의 개혁을 기본 정책방향으로 두고 있었다.

“변경으로 보내야 합니다. 큰 역할이 있습니다. 후금국의 왕자들과 친교를 맺고 있으니 그들과 교류해 정세 판단의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그것도 나라 방비의 하나입니다. 외교력이란 것이 수만 병사의 힘보다 앞설 수 있습니다.”

정충신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

“전하, 변경으로 가겠습니다.”

정충신은 궁궐 상황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한시도 궁궐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음모와 배신과 사람 씹는 소리가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패당들이 다투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으로 불덩어리가 올라온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백사 대감은 이런 것까지 염두에 두고 정충신이 어서 도성을 빠져 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오염된 거리에 눌러있다 보면 그에게도 똥바가지가 씌워지고, 또 어느 칼에 당할지 모른다.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계홍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