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17) ‘밀재-오정자재’ 구간(2019. 3. 16.∼17.)

모처럼 활짝 갠 날씨…파란 하늘 배경 남근바위 우뚝

바위보단 숫제 봉우리 가까워…수리봉 가는길 암릉 계속

밀재 출발 추월산 등반길 완만…보리암쪽은 급경사 길

호남정맥 암릉 위 소남무 일제 항거 김병로 선생 절개 연상

밀재를 출발한 추월산 정상을 향하는 길에 촛대바위 앞에 선 필자. 촛대바위 멀리 추월산 정상부가 보인다.
아침 9시에 친구 겸신군을 태우고 산행기점인 밀재로 출발하였다. 광주에서 담양을 지나 추월산 방향으로 가다가 ‘추성삼거리’에서 ‘복흥’방향으로 좌회전하면 추월산 자락을 타다 밀재에 이르게 된다.

9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하는데 전화가 걸려오는 바람에 9시 57분경 트랭글을 켰다. 밀재에서 추월산에 오르는 길은 상당히 완만하다. 보통 광주사람들은 보리암 쪽으로 추월산을 오르는데 그 길은 꽤나 가파르다.

날씨는 지난주보다 추워져서 이제 막 피어나는 생강꽃이 반쯤 고개를 내밀고 있다. 불과 3∼4미터 차이인데 정맥길 우측의 양지바른 쪽에 있는 생강나무는 벌써 꽃을 활짝 피웠다.

정맥길 왼쪽의 순창군 복흥면 쪽 사면은 참나무를 베어내고 새로 조림을 해놓아서 헐벗은 산처럼 보인다. 조림한 나무들은 너무나 가늘어 무슨 나무인지도 알 수 없는데, 친구 얘기로는 표고버섯 재배를 하는 이들이 참나무를 베어내고 참나무 묘목을 다시 심은 거란다.

추월산 정상을 안내하는 이정표.
편안한 흙길로 이어지던 정맥 길은 추월바위에 이르러 조금씩 거칠어지다가 갑자기 나타난 암봉 하나에 막힌다. 이곳이 729m의 추월산 정상이다. 1시간 만에 정상에 닿아 기념사진을 찍고 좌회전하여 수리봉 쪽으로 향한다. 수리봉은 지도상 726m로서 거의 추월산과 고도 차이가 없다. 수리봉에 이르는 길부터는 암릉이 계속되므로 조금 주의를 요한다. 어제 내린 비가 이곳에는 잔설로 남아 있다. 수리봉 정상 조금 못 미쳐서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등산객 무리를 만났다. 이분들은 가인연수원 쪽이나 건양동 쪽에서 출발했는지 벌써 힘든 기색이 완연하다. 나에게 “정상 얼마나 남았어요?”라고 물어서 “곧 가요”라고 대답했는데, 한 녀석이 “거짓말이죠”라고 반문한다.
등반길에 만난 돌탑.
수리봉에서 다시 암릉 길을 따라 삼적산 깃대봉으로 불리는 710봉 쪽으로 북진을 한다. 도중에 남근바위가 우뚝 솟아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의 남근바위는 바위라기보다는 숫제 봉우리에 가깝다. 날씨는 모처럼 활짝 개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솟은 남근바위가 더욱 우람하다.

12시 10분경 다다른 710봉에 도착했는데, 이곳에서 가인연수관으로 내려가는 길은 매우 가파르고 위험하여 로프에 의지해야 한다. 10여년 전에 눈 쌓인 이 구간을 하산하면서 로프가 얼어 있어서 애를 먹은 추억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오정자재 표지석
1시에 가인연수관에 닿았다. 가인연수관은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1886∼1964) 선생을 기려 2010년 그 분의 생가가 있는 복흥면에 건립된 건물인데, 호남정맥의 정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가인 김병로 선생은 1906년 70여명의 의병과 함께 순창읍 일인보좌청을 습격한 폭도(?) 출신이다. 일본 침략자들이 한일합병을 하기 전 전라도에서 대한제국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의병이 일어났는데, 일제는 이를 폭도라 부르고 ‘남한대토벌 작전’을 벌여서 화승총이 주무기인 의병들에 대한 대학살을 자행한 바 있다.

의병 투쟁이 실패로 끝나고 가인은 1910년 도일하여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다음 1919년부터 경성지방변호사회 소속으로 변호사 개업을 한다. 그 뒤로 10여년을 광주학생독립운동 사건 등 수많은 치안유지법 사건을 무료 변론하다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지자 1932년 경기도 양주군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면서 은둔하였다 한다. 은둔생활 중에도 창씨개명을 거부하였고 일제가 주는 배급도 거절하였다고 하니, 그 기개는 가히 호남정맥 추월산의 암릉과 그 위의 낙낙장송을 닮았다고나 할까.

가인연수관 바로 뒤에는 드넓은 밭이 펼쳐져 있는데 혼자 사는 기인이 수천평이 넘는 밭을 경작한다고 한다. 마침 그분이 통나무로 만든 농막 앞에 나무탁자가 놓여 있어서 편하게 점심을 먹었다. 그 위에는 묵제정(默帝亭)이라는 현판이 달린 정자도 보이는데, 이 집 주인이 말없는 황제이신가 보다.

추월산 정상에 선 친구 겸신.
추월산 정상에 오른 필자.
1시경 점심을 먹고 출발하여 북추월산이라도 불리는 520봉우리와 510봉을 연거푸 넘고 나니 1시 30분이 넘었고, 마지막으로 지도상 390고지로 나와 있는 산신산에 닿으니 2시가 되었다. 오늘 산행은 시간관계상 천치재에서 마감하기로 하고, 산신산에서 친구가 가져온 계란을 먹고 힘을 내어 천치재로 내려오니 2시 20분이 되었다.

다음날인 3. 17. 오후 1시에 다시 천치재에 도착하여 오정자재까지 단독산행을 하였다. 치재산, 용추봉,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10.9km 구간을 3시간 46분 만에 주파하였다.

용추봉 올라가는 길에 키가 넘는 조릿대 숲과 508봉과 310봉의 매우 위험한 암릉구간이 기억에 남는 구간이었다. 오후 5시에 오정자재에 닿아 다시 순창 복흥콜택시“(063)652-7747)”로 기사를 부르니 10분 만에 도착한다. 참고로 개운치부터 추령, 감상굴재, 밀재, 오정자재는 모두 순창 복흥콜택시를 불러야 요금이 싸다.

다음 주는 순창 강천산 구간과 담양 산성산 구간을 종주할 예정이다.
등반길에 만난 농막
치재산 정상 표지.
밀재-오정자재 구간 등반을 기록한 트랭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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