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광해시대 1장 역사 청산 <342>

광해가 이항복을 향해 치사했다.

“선왕께옵서 이항복 대감의 충절을 높이 샀소. 선왕의 의주 몽진을 진두지휘하였고,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직접 2만 구원병을 데려온 것도 이 대감의 역할이었소. 이 대감 선친인 이몽량 형판 대감도 나라의 기강을 잡는 데 역할을 하셨지요? 그러므로 이 대감의 가대는 조선왕실에 충절을 다한 집안이오. 특히 과인이 왕권을 물려받도록 원로로서 역할을 다한 것은 내가 크게 후사(厚謝)할 일이오.”

“성은이 망긍하옵니다. 순리대로 나가야 한다는 것 뿐인데, 치사하시니 감격스럽습니다.”

“그런 중에 이 대감의 가족사에 쓰라린 비극이 있었다지요? 왜란 때, 백형은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피난을 가다가 물에 빠져 죽었고, 조카 부부도 산고와 재해로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를 들었소.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 대감의 어린 딸이 병으로 죽어가면서 아버지를 보고 싶다고 세 번 아버지를 부르다가 숨을 거두었다는 말을 듣고는 나도 가슴이 먹먹했소. 그러함에도 가족사의 비극을 넘어 위국헌신한 것은 두고두고 공직사회에 귀감이 될 것이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또하나 치사드릴 것은, 백사 대감이 전라도의 평민인 정충신을 발굴하고 가르쳐서 임진왜란 의 국난을 극복할 장수로 키운 공이오. 사실 한 인간을 출신 배경보다 사람의 됨됨이와 능력을 보고 길러내기란 신분사회가 강한 조선사회에서 얼마나 지난한 일이오. 최명길, 이시백 등은 문벌이라도 있지만 말이오. 백사처럼 사람을 신분의 차이보다 능력의 차이로 보아야 하는데...”

이항복이 머리를 조아렸으나 끌탕에는 무언가 불호령이 떨어질 것같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도자는 처음에는 세련되게 칭찬을 하다가 나중에 약점을 파고들기 마련이다.

“과인은 한번 믿는 사람은 철저히 믿는 사람이오. 그런데 이 한마디는 하고 싶소이다. 이 대감의 속을 알 수가 없단 말이오. 임해군을 숙청할 때도 반대했고, 영창대군과 인목대비에 대해서도 관용을 베풀라 하고, 능창군을 벌하는 것도 반대했소. 조정의 기강이 서지 않으면 나라를 다스리기가 어려운 법, 그래서 엄히 다스리는 것이 왕실의 법도이거늘 이것을 막았소. 나를 도운다면 끝까지 도와야 하는 것 아니오?”

광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사설을 길게 늘어놓은 것 같았다.

“이 대감, 능창군이 민심을 얻고 있다는 것 알고 있지요?”

“소신으로서는 젊은 사람들이 노는 곳에 갈 나이가 아니지요. 포천 농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능창군은 지혜가 뛰어나고 독서를 좋아하며, 외모 또한 출중해서 한 인물 할 것이라고 칭송이 자자하다면서요? 게다가 무술에 뛰어나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 하는 등 인간으로서 모자람이 없는 현공자(賢公子)란 별칭이 장안에 파다하다고 퍼졌다던데?”

광해는 어떤 피해의식에 젖어있었다. 그는 왕권에 대한 위협을 늘 경계했는데, 그것은 아비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병적인 의심병이었다. 그 역시 적통 왕자가 아니라 서자가 왕위를 계승하여 방계 승통이라는 오점을 남긴데다가, 세자 책봉 과정에서 서장자인 임해군을 제치고 선택된 터라 중국의 고명을 한동안 받지 못했다. 그리고 영창대군 편에 선 유영경의 모략 때문에 왕으로부터 선위 교서를 받지 못해 늘 불안한 상태로 조마조마하게 살았다.

왕권에 대한 이같은 위협은 광해군으로 하여금 정적 제거 작업에 몰두하게 하는 엉뚱한 반작용을 낳았다. 한번 피를 보면 끝없이 보는 것이 복수라는 이름의 숙청인지라 한번 속도가 붙으니 연일 피바람이 불었다. 이항복은 이것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세자 시절의 총명이 사라지고 눈에 핏발이 선 복수의 일념을 보이는 광해를 보고 이항복은 어두운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백사 대감, 나에게 지혜를 주시오. 명청 관계에 대해서도 고견을 주시오. 이 대감과 정충신 군관은 후금과 친하게 지내자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정충신이 나섰다.

“상감마마께옵서도 후금과 친하게 지내자고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 동향으로 볼 때 그것은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지낼 것이냐를 살펴야 하는 것인즉, 해답을 찾기 위해 소신이 후금으로 들어가겠나이다. 첩보를 입수하여 후금의 권력 구도나 병력, 군수 물자 등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명과의 관계, 조선을 보는 눈도 살피고 오겠습니다.”

“후금의 후계구도까지 파악하고, 누르하치의 후계자 아들들의 동태를 파악해오기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의 동태도 파악하기 바란다. 명이 나를 업신여긴 골탕을 먹을 날도 멀지 않았군.”

그가 명나라에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은 소멸해가는 노대국이란 인식 때문 뿐만이 아니라 세자 책봉 과정에서 자신을 홀대하고 부정해온 것에 대한 개인적 사감도 없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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