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코리아’와 북한 선수단
최영태(전남대 교수)

남한(KOR) 3위, 북한(PRK) 10위, ‘코리아’(COR, Unified Korea) 28위. 2018년 9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여한 우리 민족 3개 국가의 성적표이다. 여기서 ‘코리아’는 망명국가가 아닌, 남북한 단일 선수팀을 지칭한다. 이 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은 여자 카누 용선 5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을 비롯하여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획득했다. 메달 시상식장에는 한반도기가 올라갔고,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한반도기를 국기로 하고 아리랑을 국가로 하는 ‘제3 코리아’가 출현한 것이다.

남북한 선수단이 국제 스포츠 대회에 공동 입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였다. 남북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공동 입장했는데 이 장면은 호주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2002년 9월 부산 아시안게임에 북한은 선수단과 응원단을 함께 파견했다. 남한과 북한 선수들은 개막식에 같은 옷을 입고 한반도기를 앞세우며 함께 입장했다. 경기장에 북한의 국가가 연주되고 인공기가 휘날렸지만 아무런 충돌사태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석한 북한 여자 응원단은 부산 아시안게임의 최대 흥행요소가 되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018년 평창 올림픽 때는 역사상 최초로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코리아’란 이름으로 남북 단일팀을 만들어 출전했다.

남한과 북한이 가까운 시일 내에 정치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무리하게 하나가 되려 한다고 해서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6.25 전쟁은 수백만 명의 사상자(死傷者)를 냈지만 그 결과는 38선을 휴전선으로 대체시켰을 뿐이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남북한이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분단의 비극을 완화하고 공존공영하며 민족 동질성을 유지해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 통일의 날도 올 것이다.

민족의식은 인간이 서로 부대끼고 환경을 공유하는 정보의 질과 양에 의해 결정되어진다. 동서독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20년 동안 동서독 교류·협력 정책을 열심히 시행했다. 서독인의 동독 방문과 동독인의 서독 방문은 한 해에 각각 8백만 명과 5백만 명에 이를 때도 있었다. 동서독인 간의 편지 교환 및 전화 통화는 언제나 가능했다. 독일은 1990년 정치적 통일에 앞서 민족적 측면에서 사실상 절반의 통일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 남한과 대규모로 인적 교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 북한에게 독일식의 교류를 기대하면 오히려 부작용만 생긴다. 우리의 실정에 맞는 교류 방식을 찾아야 한다. 민족의식과 통일에 대한 염원이 독일보다 강한 점을 잘 활용하면 된다. 스포츠 분야에서 ‘제3 코리아’팀의 존재는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남북관계가 더 진전되면 초·중등학교 역사책, 국어책, 사전 등을 함께 편찬하는 등 비정치적 영역에서 협력의 범위를 크게 확대시켜나갈 수 있다. 금강산 특구, 개성공단도 넓게 보면 ‘제 3코리아’의 사례들이다. 남북은 2000년 6.15공동선언에서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하였다. 스포츠 분야에서 ‘제3 코리아’의 등장은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실현을 위한 조심스러운 실험이다.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개막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아쉽게도 북한 선수단의 참여가 아직도 결정되지 않았다. 북미관계의 진전이 더딘 것이 결정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아직 시간이 있다. 국제수영연맹(FINA) 코넬 마르쿨레스쿠 사무총장은 대회 참가 마감일이 6월 12일이지만 그 이후에도 참가가 가능하다고 했다. 아마도 북한은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보고 최종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북한에 요구하고 싶은 게 있다. 북미관계가 어떻든 광주수영선수권 대회에 선수단을 참여시키라는 것이다. 남북한이 다시 공동입장과 ‘제3 코리아’팀의 결성으로 전세계에 우리 민족의 단결력을 과시하고 한민족의 평화 의지를 보여주자. 수영대회처럼 비정치적 분야에서부터 외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통일을 이루어나가자. 그게 바로 6·15공동선언 1항의 내용인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한 정신에 충실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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