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일곡출신 노석중 · 노석정 형제
독립운동 자금 모금하다 체포돼 옥고
전아협·한준호·신덕영 등과 비밀 활동

3.1운동과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한 북구 일곡, 생룡마을 등 광주이씨, 광산노씨, 금성범씨 후손들을 초청하여 감사 전달한 광주 북구

전라남도 광주 본촌 일곡 출신 노석중(盧錫中,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과 노석정(盧錫正,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은 형제간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한 것이 발각되어 각각 최고형량인 7년형, 5년형의 옥고를 치렀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노석정은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여한 뒤 상해로 망명했다. 1920년 국내로 잠입하여 동지인 전아협·조병철·김정련·윤영기·양인묵·노형규·조병렬·신유선 등과 함께 서울에 있는 신덕영 및 최양옥 등과 연락해 가며 광주·화순·곡성·담양·보성 등지에서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군자금 모금활동을 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전남 광주군 이윤호의 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제특파원 한준호·박문용·이재환·정용택 등과 회합하여 함께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할 것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군자금 모금활동을 전개하던 중 광주에서 피체되어 1921년 5월 3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7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노석중

노석중(盧錫中)은 1919년 전협(全協)으로부터 대동단(大同團)의 결성 취지를 듣고 이에 찬동해 동단에 가입했다. 대동단은 3·1독립운동 직후 한민족의 민족역량을 결집하여 민족적 대동단결과 실력양성을 표방하고 민족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을 목적으로 전 협·최익환 등이 주도하여 결성된 비밀결사였다. 대동단은 김가진을 총재로 추대하여 황족·유림·종교·상공·노동·청년·군인·부인 등 사회 각 계층의 인사들을 규합하려던 조직으로서, 주로 각종 인쇄물의 인쇄·배포 등을 통한 독립사상의 고취와 동단의 선전활동 및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했다. 이때 그는 전남 도내에서 동지들을 규합하여 신덕영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이러한 사실이 일경에 탐지·피체되어 1921년 5월 3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김재기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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