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50년, 10년의 기획 10년의 행동
이민철(광주마당 이사장)

‘나는 그때 송정리에서 양품점을 하고 있었는데 시민군들에게 필요한 물건 가져다쓰라고 문을 열어 두었어요. 옆의 약국도 필요한 약을 모두 내놓았고, 슈퍼도 먹을 걸 가져가라고 문을 열어 두었지요.’

광산구 송정동에서 열린 이야기마당에서 나온 이야기다.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고 시민들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있다. 5·18 민주광장에서는 광주 시민 뿐 아니라 전국에서 온 사람들, 해외에서 온 사람들까지 마이크를 잡았다. 동구에서는 경로당과 마을회관을 돌며 이야기판이 열리고 있다.

‘나의 5·18,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2030년’이 이야기 주제다. ‘그때 수창초등학교 근처에 살았는데, 계엄군이 집집마다 수색하며 다락문까지 열어 이불을 칼로 찔러보고 그랬어요. 혹시 학생들이 숨어 있지 않나 수색을 한 거죠.’ 시민들은 39년 전의 경험을 서로의 기억을 맞춰가며 이야기했다. 이야기마당을 진행하는 사람들, 기록팀들은 2030년까지 시민들의 이야기판을 만들겠다고 한다. 나의 5·18을 통해 우리의 5·18로 서로를 연결하는 과정이다.

87년 6월 항쟁은 5·18 싸움의 연장이면서 1차 승리였다.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에 의해 진압당했지만 그 아픔을 안고 시민들은 계속 싸웠다. 민주화 운동은 광주를 넘어 전국으로 번져갔고 마침내 87년, 전두환을 무너트렸다. 87년 광주는 서울과 다른 도시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또 다시 고립된 싸움이 될까 걱정이 컸다. 전국에서 일어난다는 소식에 광주는 신명나게 거리를 점령하고, 광주출정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소리 높여 불렀다. 전두환 일당은 또 다시 군대를 동원하지 못하고 항복선언을 했다.

광주는 5·18 도시, 혁명의 도시, ‘임을 위한 행진곡’의 도시다. 민주주의를 향해 영원히 행진하는 도시다. 한국사람 뿐 아니라 광주를 아는 많은 세계인들에게도 그렇다. 마을마다 자치를 이루고, 서로 돌보는 이웃 사촌이 되고, 시민들이 직접 결정하고 다스리는 도시는 5·18의 현재 진행형이다. 독재, 불의와 싸우는 현장과 연대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도시라면 광주답다고 박수를 받을 것이다. 특유의 열정과 창의력으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무엇들’을 생산하는 도시가 된다면 광주가 또 다른 민주주의를 열게 될 것이다. 거대기업이 독점하는 도시가 아닌 작은 생산자들이 공생·공존하는 도시다.

나의 5·18을 통해 우리의 5·18을, 나의 2030년을 통해 우리의 2030년을 계획하고 함께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5·18 50년, 10년의 기획 10년의 행동’이 그 것이다. 올해부터 2020년 5월까지 함께 할 사람들과 단체들이 모이고, 2020년부터 2030년까지 10년 동안 할 일을 기획한다. 예를 들어 광주마당에서는 10년간 ‘혁명의 도시, 광주 순례길’을 매월 걸으면서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10년 동안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겠다는 사람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고, 5·18로 인해 아픈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을 치유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매년 5·18 기간을 민주주의 축제 주간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 아시아의 민주주의 운동을 지원하고 연대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무슨 일이든 10년을 꾸준히 실천하면 분명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다.

6월 1일,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우던 서유진 선생이 망월묘역에 안장되었다. 5·18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숨은 공로자였고, 광주정신을 아시아 곳곳에 전파한 분이다. 그리고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분이다. 선생은 늘 입버릇처럼 광주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광주가 무너지면 아시아 민주주의가 위험해진다고 걱정했다. 선생은 아시아 곳곳이 광주를 통해 용기와 힘을 얻고 있으니 광주는 한 발씩 더 나아가야 할 책무가 있다고 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던 분이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광주에 잠시 들러 여러 지인들을 만나고 유언처럼 당부를 남겼다. 그리고 미국 볼티모어 가족들 품에 돌아간 지 이틀 만에 생을 마감했다. 마치 죽음을 알고 있었던 듯한 행보였다.

광주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광주와 5·18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한 영혼, 서유진 선생이 망월묘역에서 앞으로도 광주와 함께 할 것이라 생각하며 마지막 당부를 가슴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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