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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2장 변경의 북소리<349>

“왜 하필이면 이때 왔는고?”

백사 이항복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정충신을 맞았다. 스승을 깎듯이 모시는 정충신을 바라보는 백사의 마음은 착잡했다. 영의정·우의정·좌의정을 번갈아 맡으면서 국가대사를 대과없이 이끌어온 공적으로 오성부원군에 봉군되고, 광해의 세자 책봉에도 당쟁의 이해득실에 상관없이 순리대로 이끌어 선조 대는 물론 광해 대에도 사심없는 인물로 존경받아 왔지만, 근자에는 내쳐지고 있었고, 그 스스로도 광해의 통치에 심히 불만을 갖고 있었다. 조정의 나날이 칼날 위를 걷는 것만큼이나 위태위태해보였다. 그래서 동구 뒤편 언덕에 동강정사라는 별장을 짓고 동강노인으로 자칭하며 사실상 은퇴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정충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후금을 정탐하고, 변경 상황을 살피고 왔는데, 그새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오성(이항복) 대감은 대답 대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파로부터 초연한 사람인데 이런 한숨을 쉬고 있는 것이 정충신은 의아했다. 그는 지금까지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것도 요령과 눈치로 줄을 타서 얻은 벼슬이 아니라 보기 드문 경륜과 고매한 인품으로 요직에 있었다. 문신 이정구도 이항복을 가리켜 “그가 관작에 있기 40년, 누구 한 사람 당색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지만, 오직 백사(이항복) 대감만은 초연히 중립을 지켜 공평무사하게 처세하였다. 아무도 그에게서 당색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일도 가치 중심으로, 나라 중심으로 행하는 기품있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정충신 역시 그런 스승을 따르고, 그래서 그 역시 무당파로서 군인의 직분에 충실했다.

“대감 마님, 변경이 위태롭습니다. 후금 장수 아민이 압록강 이남에 들어와 있습니다. 또 모문룡이란 명군 부대장이 변경에서 어지럽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변경에서 명과 후금이 싸우고, 우리도 거기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철두철미 국경을 보강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임금님은 명나라에 1만5천의 병사를 파병한다고 하지 않느냐.”

“아니됩니다. 명은 이미 끝났습니다. 그런 나라에 원군을 보낸다는 것은 시루에 물붙기입니다.”

“그것도 문제거니와 궁중에는 지금 피바람이 불고 있다. 그것이 더 큰 문제다.”

“피바람이라니요?”

“인목왕후의 친정 아버지 김제남 일가를 멸문한 지가 언젠데, 또 지금 영창대군을 살해하려는 흉계를 꾸미고 있다. 인목왕후를 폐서인(廢庶人)해 경운궁(덕수궁)에 유폐하는 모의를 하고 있다. 이것이 어찌 북인 세력만의 작태라고 할 것이냐.”

그 세력만의 작태가 아니라면? 그 배후에는 광해가 있다는 것을 백사 대감은 암시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북인 정인홍 일파가 폐서인을 반대하는 나를 파직하라고 격렬하게 상감마마께 고변하고 있다.”

“어찌 그 자들이 그런 수작을.... 스승님은 사실상 동강정사에 은거하고 계시잖습니까.”

“상감마마께서 좌의정 자리를 내놓는 대신에 소임도 없는 중추부로 자리를 옮겨 봉직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그 자들은 그 꼴도 못보겠다는 것 아닌가. 삭탈관직이 그들의 노림수야.”

광해는 자신의 왕권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해 가면서 왕권을 강화했는데, 북인 세력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는 왕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도처에 깔려있다고 보고, 여차하면 피바람을 불러왔다. 그중 가장 많이 다친 세력이 왕족이었다. 가장 큰 위협의 대상이 친족이라고 보고 이들을 여러 이유를 붙여 숙청하고 있었다.

이항복은 그것이 큰 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순망치한.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릴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형제나 친구 한쪽이 사라지면 다른 쪽도 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관계망이다. 이렇게 내치가 불안정한 가운데 명나라에 대군사를 파병한다? 그것은 또다른 임진왜란 같은 재난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정충신은 공연히 마음이 다급해졌다.

“스승님, 제가 지금 어전에 나가보겠습니다. 변경 상황을 보고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분위기가 험하다. 말 한마디가 자칫 잘못 나가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키 어렵다. 그렇게 당한 자가 몇 명이더냐.”

“저는 군인으로서 변경을 둘러본 상황을 사실대로 보고하고, 명나라 파병에 대해서 군인으로서 의견을 개진코자 합니다. 그것이 제가 북변을 돌아본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됐다. 대신 내치 문제는 입도 뻥긋 말라. 예전에는 주제넘는 얘기도 별일없이 수용되었지만 지금은 용납이 안된다. 그렇게 세상이 험악하게 되었다.”

정충신은 그 길로 어전으로 나갔다. 광해가 그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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