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제3부 2장 변경의 북소리<350>

“상감마마, 북변을 살피고 온 상황을 보고하고자 하옵니다.”

“그래 말해보렸다.”

광해가 용좌에 앉은 자리에서 용포 자락을 한쪽으로 와락 제끼며 정충신을 내려다보았다. 그 표정이 사뭇 못마땅하다는 투였다. 임금이 뭔가 그를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정충신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순간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정중히 입을 열었다.

“마마, 국경 수비 지역을 돌아보고 온 즉 변경이 심상치 않습니다. 나라의 방위를 위해 각 영(營)에 전령하여 우영포수 2천명, 좌영포수 2천명, 중영(中營)포수 1천명을 뽑고, 궁수와 검투사를 배치해야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무슨 뜻이냐.”

“중국에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는 바, 이런 때일수록 국경지대를 탄탄하게 방비해야 합니다.”

“명나라가 쳐들어온다는 것이냐?”

“명나라 군대도 될 수 있고, 후금군도 될 수 있으며, 몽골군도 될 수 있습니다. 방비하지 않으면 어느 나라에게도 먹힐 수 있습니다. 그중 명군은 우리의 사대 질서의 헐맹군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군대 나름입니다. 모문룡 군대가 후금군을 물리친다고 하면서 엉뚱하게 조선 변경으로 넘어와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사옵니다.”

“모함이다. 모문룡 부대가 그럴 줄 알고 벌써 장계를 보내왔다.”

순간 정충신의 뇌리에 섬광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 그렇지. 그들이 정충신에게 당하고 있다는 것을 역으로 조정에 고변한 것이다. 조선을 위해 군무에 충실한데 상응하는 부식을 제공하지 않고,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미리 치고 나와버린 것이다. 현장 상황을 모르고 있는 조정은 무조건 대국의 말을 믿는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그대가 저들의 정당한 요구를 거절하고, 그들을 관아 밖으로 내쫓아내버렸다고 하는데, 그것이 온당한가?”

“전하, 그것은 잘못 전달된 정보이옵니다. 소인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보고를 올리는 것인즉 참작하여 주십시오.”

그는 본대로를 그대로 전달했다. 명군의 못된 짓을 하나하나 손금보듯 보고했다. 정충신의 말을 듣고 있던 임금이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했다.

“내 심사가 괴로워서 여러 가지 삿된 얘기에 경도되었다. 그대 말이 과연 옳다. 게다가 신임 의주부윤은 이순신 장군의 조카 아닌가.”

“그렇습니다. 이완 부윤이옵니다.”

“그가 탐악질하는 명군을 볼기를 때린 것은 그다운 일이다. 정 첨사의 말을 들으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광해는 옳다고 생각되는 것은 쉽게 즉석에서 수용하는 성격이었다.

광해는 세자 시절 분조를 이끌고 삼남지방을 순방할 때 이완을 만났다. 그는 이순신 휘하에서 의병으로 있었다. 활약상으로 보아 관군이 되고도 남았으나 당시 조선의 국법에는 ‘상피제‘라고 해서 친인척들이 같은 지역에서 관직생활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이를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에 이완은 군관이 아니라 의병으로 활약하면서 우수영과 여수에서 판옥선의 격군을 모으러 다니고, 모인 장정들을 수병으로 훈련시키고 있었다.

그가 무과에 급제헤 무관으로 등용된 것은 이순신이 전사한 후의 일이다. 숙부가 살아있을 적에 특혜를 받을 수 있었지만, 전란이 수습된 후 정식으로 무과시험에 응시해 무관이 되었다. 이 점을 높아 사서 광해는 그를 몇군데 임지를 돌게 한 뒤 파격적으로 의주부윤으로 임명했다. 그런데 모함이 많았다. 승진과 승급이 빠른 그를 투기하는 자가 많았고, 명군인 모문룡 부대를 따르는 자들이 그 짓을 했다. 대국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자들의 행악질이었다.

“조선군을 명나라에 파병하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렸다?” 광해가 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 부대를 관서지방의 장정들을 모아서 훈련시키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렸다?”

“알고 있습니다. 강홍립 장군이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파병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뭐라고? 그것이 무슨 뜻이냐.”

정충신은 후금의 누르하치와 그 아들 다이샨 패륵 형제들의 용맹성을 직접 보았다. 그들의 팔기군은 천지를 진동할만큼 막강하고, 병마만도 1만두가 넘었다. 어떤 무엇도 삼켜버릴 군사 위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후금국은 동북 3성을 주요 거점으로 하고 있으니 조선반도의 접경지역이다. 이천 리 길을 맞대고 있는 후금국을 적대하고, 그들의 적인 명군에 파병한다? 더군다나 누르하치는 조선을 조상의 나라로 여기고, 예법의 나라로 추앙하고 있는데, 이들을 배신한다? 거기에 모문룡 군대까지 생각하면 더 혼란스럽다. 그들이 사대국의 군대라고 해도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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