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

3부 3장 북청 유배<354>

“안된다.” 정충신의 요청을 왕은 단칼에 잘랐다. “정 군관이 있어야 할 곳은 변경이다. 변경이 어지러운데 사사로운 사제지정으로 군인의 임무를 방기해서 되겠느냐. 공궐위장을 면하고 압록강으로 떠날 것을 명하노니, 백사 대감의 일에 관여치 말라.”

이항복의 구명을 위해 왕을 알현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이첨의 무리들이 이항복의 농막으로 쳐들어갔다. 구명의 배후에 이항복이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중추부 경력(실무 처리를 맡은 종4품 벼슬) 이사손이 백사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정충신 공궐위장이 원임대신(전임대신) 백사공을 따라 북청행을 자청했다는데, 백사공이 원했던 것이오이까?”

“그게 무슨 소리냐?”

이항복이 의아해서 되물었다. 생뚱맞은 질문인 것이다.

“그러면 좋습니다. 정충신이 구인후, 이중로 등과 함께 허균·백대형·김개를 해치려 했다는데, 누군가의 사주가 있었겠지요?”

그들은 어떻게든 정충신을 엮어넣을 생각을 하고, 거기에 백사 대감을 배후자로 몰아가려는 낌새를 보이고 있었다. 이항복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삿된 말을 함부로 하느냐. 용렬한 놈들, 당장 나가라!”

인목왕후의 서궁 유폐를 반대한다는 이유 하나로 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현실이 그는 답답했다. 인륜에 합당하지 않고, 왕의 후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반대했을 뿐인데, 이런 모함이라니... 그것은 오랜 정치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니, 가까운 사람을 치면 반드시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보복을 당하게 되어있다. 정충신이 이이첨의 휘하 허균·백대형·김개를 해치려 한 것도 스승을 따르기 때문이었다. 스승의 길이 옳은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 길을 따르고 있었다.

허균은 칠서지옥(七庶之獄) 사건에 연루되어 곤경에 처해 있었다. 평소 신분적 울분을 안고 살던 서자들이 신분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문경새재에서 은상(銀商)을 살해해 군자금을 마련한 사건이 났다. 영의정 박순의 서자 박응서, 심전의 서자 심우영, 목사 서익의 서자 서양갑, 병사 이제신의 서자 이경준, 상산군 박충간의 서자 박치인과 박치의, 서얼 허홍인이 변란을 일으켰는데, 여기에 허균도 연루되었다. 7명의 서자 가운데 심우영은 허균의 제자였고, 다른 서자 출신들과도 친분이 있었다. 이들이 체포돼 처형된 사이 허균도 궁지에 몰렸다. 관련성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허균의 평소 사상이 서얼 출신에 대한 동정이 깊었던지라 의심을 샀다. 궁지에 몰리자 허균은 자신을 보호해줄 후견인을 찾았다. 마침 대북의 실력자 이이첨이 허균의 어렸을 적 글방의 친구였다. 허균은 이이첨에게 생사를 의탁하게 되었고, 결국 옥사에서 화를 피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호조참의와 형조판서 자리에까지 올랐다.

허균은 이이첨의 세력이 되어 인목왕후의 폐비를 주도했다. 같은 북인인 정온을 비롯해 남인계 이원익 등 신료들이 폐비론을 반대했다. 허균과 함께 동지였던 영의정 기자헌 역시 반대했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가 달라지면 옛 동지를 더욱 압살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 속성이다. 자기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더욱 가열차게 옛 동지를 밟아버리는 것이다.

허균은 인목대비의 죄를 언급하는 것은 물론, 영창대군은 선조의 아들이 아니고 민가의 아이를 데려다가 기른 것이라는 방을 써붙였다. 그의 뛰어난 문장력은 나라를 현혹시키는 데 충분했다. 정충신은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 현란한 문장으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은 죄질이 더 나쁘다고 보았다. 그래서 제거하려고 나섰는데, 이사손은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사손이 꾸지람만 듣고 소득없이 농막을 떠난 뒤 이항복이 그 자리에서 상소문을 썼다.

-신이 중풍과 해소를 얻어 삶을 체념한 지가 벌써 반년이 지났사오나 어찌 감히 병을 핑계로 국가중대사를 보고만 있을 수 있겠나이까. 누가 전하로 하여금 전하의 모친을 내쫓는 계획을 꾸몄습니까. 옛날부터 임금과 아버지 앞에서는 요순의 일이 아니면 말씀을 올리지 않는다고 가르쳐왔습니다. 우(虞)나라의 순 임금이 어렸을 적 어리석은 계모를 만나서 순의 아버지 고수는 계모의 말을 듣고 어린 순을 죽이려고 순에게 샘을 파도록 하여 순을 묻어 죽이려 하였으나 이를 눈치 챈 순이 샘의 곁에 구멍을 내어 살아나왔나이다. 또한 순에게 높은 창고의 벽을 바르라 하여 벽을 바르고 있는 중에 사다리를 걷어차 죽이려 하였으나 큰 삿갓을 겨드랑이에 끼고 일을 한지라 땅에 떨어져서도 살아났습니다. 이와같이 자식을 죽이려던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순은 도리어 부모에 대해 효성을 다하여 마침내 아버지 고수로 하여금 뉘우치도록 하였습니다. 춘추대의(春秋大義:명분을 밝혀 세우는 큰 의리)에도 ‘부모가 비록 옳지 않은 일을 했어도 자식으로서 효도를 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자식이 부모를 원수로 삼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제 순 임금의 덕을 본받으셔서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여 모자간에 화합하시기를 바라옵니다. 전하께서 진노하신 바를 푸시기를 어리석은 신하는 간곡히 바라옵니다...

백사의 상소문을 돌려본 조정 대신들은 불같이 화를 내고 반박 상소문을 올렸다. 대북파 생원 진호선과 선세휘, 최상질이 선두에 나섰다. 궁궐에 때아닌 상소문 쟁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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