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미 전남 강진군의원의 남도일보 월요아침
아름답고 쓸모있는 고려청자 이야기 1
김보미(전남 강진군의원)

6월도 달력을 넘긴 지 벌써 보름이 넘었다. 농촌에서도 혹은 각자의 다른 일터에서도 유월은 가장 바쁜 시절이며 역동이 숨 쉬는 시기이다. 주인임을 자각한 이들과 함께 이루는 평화와 개혁은 답답하리만치 더디고 안타깝다. 오늘은 앞길을 내어주지 않고서는 대해(大海)를 채우지 못하는 강물인 듯이 머리는 비우고 마음을 채우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어느 한 시절에 편중할 수는 없지만, 삶의 가장 큰 영역은 생을 위해 터를 일구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편리함을 더하고 혼을 불어 넣는 예술은 이제 우리 인생의 곳곳에서 함께 자리한다. 그릇은 본래의 목적에 장인의 숨결이 더해져 스스로가 목적이 되기도 하고, 어떤 시기에는 부와 권력으로 자리했다. 최근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중 고려청자에 관한 관련 문헌들을 보며 알게 되는 몇 가지 매력은 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재미있는 고려청자 이야기가 있어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물론 예술적 가치를 논하는 어려운 미학이 아니라 ‘청자에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라는 재미있는 일화 정도로 말이다.

예로부터 ‘도(陶)를 통하여 정(政)을 본다’라는 말이 있다. 과연 도자기는 한 시대의 삶과 문화를 담고 있다. 흔히 ‘한국의 美’를 대표하는 우리 도자기는 주로 조선의 ‘달항아리’와 ‘분청사기’로 언급된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아름다움이 수더분하고 구수한 서민적 취향으로만 간주 되어 독창적인 한국의 美를 특정 시대 경향으로 제한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 시대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평가들을 겸해야 하고,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연구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강진군 청자박물관 일대에서 여러 고려청자 편이 출토되었다. 다양한 동물과 식물무늬로 장식된 상감청자 편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때 실물로 ‘여지무늬’를 처음 보게 되었다. 나의 짧은 식견으로 무엇을 그린 건지 알 수 없었는데 딸기무늬 혹은 여지무늬라고 하니 도대체 무엇인지 도통 어렵기만 했다. ‘여지’가 중국이 원산인 열대 과일 식물로 고대로부터 귀한 과일로 여겨져 왔던 리치(litchi)라는 수입 과일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어찌나 흥미롭기도 하고 기가 차던지...

청자 상감 여지(litchi)무늬./국립문화재연구소

리치는 수입과정에서 쉽게 변질되어 대부분 급속냉동한 상태로 들여와서 냉동 보관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사실보다 청자의 어려운 명칭이 청자를 보이는 그대로 재미있게 감상하지 못하게 방해한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는 참 씁쓸했다. 관심 있게 찾아보지 않으면 특별한 감동 없이 그냥 넘어가는 소중한 문화예술이 얼마나 많은가. 아무튼 천 년 전에 수입 과일이라니 신기하고 놀라운 사실이다.

중국과 일본의 문양에서 보이는 경직성이나 완벽함의 정서에 비한다면 고려청자는 정교하고 화려함 속에서도 균제미를 동반한 시각적 편안함과 정서적 친근감이 전해진다. 규칙이 있는듯하지만 얽매이지 않는, 계획적 무계획. 고려 시대 미감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부분이다.

물가풀경무늬./국립문화재연구소

물에 비친 그림자를 이토록 천진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물가풍경의 시대적 상징과 의미를 동양의 인문정신으로 표현하자면 끝없이 유구하겠지만 오늘은 그저 함께 고려청자를 보이는 대로 감상하고 싶다.

또 고려의 도공들은 청자의 비색을 무늬의 배경색으로 잘 활용했는데 청자 완의 안쪽에 파도 물결을 조각해 바다를 담은 듯 표현하였고, 앵무새나 학을 그려 하늘을 품은 듯 표현하였다. 마치 처마에 매단 물고기 모양 풍경(風磬)이 하늘을 바다로 만들어 시공을 초월하듯 문양의 구도와 표현에서 도공의 재치를 느낄 수 있다.

침을 뱉거나 음식을 먹을 때 뼈를 버리는 용도로 쓰인 그릇 (타호:唾壺) 조차 비색으로 수작을 만드는 고려 시대의 미의식을 보며 고려청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듯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숙하고 따뜻한 맛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예술이기를 바라기보다 실용성에 장식이라는 최선을 다해 삶 속에 따뜻한 배려로 당시 생활문화를 견인했다. 세상을 청자에 담고 싶어 했던 이러한 고려청자의 미의식은 교훈으로 새겨둘 필요가 있다.

우리가 과거의 예술을 통해 실용의 목적으로써 진력을 다할 때 비로소 예술로 인정받는 것을 일상에서도 적용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청자의 여러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 천공의 아름다움이라 여겨지는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최선이 사회를 조화롭게 이루어 비로소 예술로 인정받는 멋진 사회. 참 아름다운 사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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